[대담한 대화] 쇠락하는 제화 산업, 노사 상생의 길은?

손우정
발행일 2023.11.08. 조회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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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일시: 2023.10.31.(화)

* 참석

- 노측 : 박완규(제화지부 지부장), 이창열(제화지부 성수분회장)

- 사측 : 이종찬(꾸뚜슈즈 대표), 경철호(프리뷰슈즈 대표)

- 진행 : 문종찬(제화산업 노사상생발전협의회 위원), 손우정(대담한 대화)

- 참고 자료 제작, 사진 : 임지순(제화산업 노사상생발전협의회 전문위원)

 

성동구의 2021년 기준 사업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동구에는 462개의 신발 및 신발부분품 제조업 사업체가 있고, 1,985명이 일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울시와 성동구는 성수동 수제화 산업 활성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제화산업은 쇠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8년, 성수동 제화 노동자들이 수년째 동결된 수제화 공임을 견디다 못해 파업(일손 놓기)을 감행했고, 제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후 전태일재단의 중재로 2021년부터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상생위원회가 추진되었고, 올해 9월, 제화산업 노사상생발전협의회가 발족 됐다.

그러나 한국의 제화산업의 문제는 노사 합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의 산물이다. 제화 대기업은 생산비가 싼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고, 원청과 백화점 등 유통사, 하청 공장과 제화공으로 이루어진 다단계 구조는 사업주마저 열악하고 위태위태한 상황으로 몰아 넣고 있다. 게다가 개수임금제(구두 제작 개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받는 체계)와 도급제는 기본적인 노동권마저 가로막고 있다.

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노사가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지만, 갈 길이 멀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안갯속이다. 이들의 대화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계속 나빠지기만 한 제화산업의 현실

 

- 사업주와 노동자가 상생의 길을 찾기로 하고 얼마 전 ‘제화산업 노사상생발전협의회’(이하 ‘상생협의회’)를 발족했다. 오늘 노측에서 두 분, 사측에서 두 분이 어려운 자리에 함께해 주셨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종찬(사측. 구뚜슈즈 대표) “직접 구두 만드는 일을 할 때부터 치면 40년 동안 제화 일을 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났는데 (제화산업 환경이) 바뀐 게 없다. 원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같은 하청 업체에 주는 단가만 깎으려고 한다. 원재료 가격은 매년 올라가는데 이걸 반영하는 걸 본사에서는 용납 안 한다. 오히려 계속 깎으려고만 하지. 안 깎더라도 공임을 똑같이 책정하면 사실상 깎이는 것이다.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는 매년 올라가니까. 아, 물론 바뀐 건 있다. 일하는 사람들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일하다가 한 사람이 나가면 우르르 따라 나갔는데, 요즘은 누가 나가도 별로 신경 안 쓴다.”

경철호(사측. 프리뷰슈즈 대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계속 안 좋아진다. 구두 일은 45년 정도 했고, 공장을 맡은 지는 21년 됐다. 뭐 한때는 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까먹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일 그만두고 다른 일 하면서 조금만 벌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식구들(제화공)을 많이 데리고 있으니까. 인건비 올려달라고 하는데, 내가 어느 정도 받으면 올려 주고 싶다. 구두 하나 만들면 마진으로 3천 원, 관리비로 4천 원 번다. 물론 이것도 모두 똑같이 기계처럼 만들어서 불량이 없는 경우에 그렇다. 깃스라도 조금 있으면 죄다 반품한다. 마진 3천 원 받는다고 이게 3천 원이 아닌 거다. 최소한 마진이 5천 원은 넘어야 뭘 쪼개줘도 쪼개주는데·····. 또 원재료도 딱 맞춰 살 수 없으니까 재고도 많이 쌓이고 있다.”

 

- 계속 나빠지기만 했나? 그래도 좀 좋아진 적이 있지 않았나?

경철호(프리뷰슈즈 대표) “없다. 40년 동안 계속 나빠졌다. 그래도 예전에는 일할 사람이 필요하면 아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 돌리면 해결됐는데, 지금은 그것도 어렵다.”

이창열(노측. 제화지부 성수분회장) “구두 일은 37년인가 38년 했다. 처음 이 일 시작할 때만 해도 팀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3~4명씩 같이 다니다가 사장하고 싸우면 우르르 데리고 나가고. 그렇게 하면 사장이 힘들어지니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았다. 기술자들도 인정해 줬고. 그런데 (1997년) IMF 지나면서 바뀌었다. 사장님들이 우리를 일하는 기계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월급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받는다.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거나 딴 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 제화산업은 도급제다. 지금도 처우가 안 좋지만, 예전에는 더 심했을 것 같다.

경철호(프리뷰슈즈 대표) “지금으로 치면 실장이고 예전에는 팀으로 움직이는 기술자들인데, 3~4명씩 데리고 다녔다. 이 사람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밑에 일 배우는 사람들을 상·중·하로 나눴다. 구두 만들면 선생님이 반 가져가고 상 견습생이 30%, 중 견습생이 20% 가져간다. 막내는 밥이나 먹으면서 일 배우는 거지. 그때는 무식할 정도로 망치로 두들겨 패고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 쉬면 선생님들 옷 다 빨아주고 구두 닦고 그랬다. 이런 이야기 하면 젊은 사람들은 안 믿지.(웃음)”

박완규(노측. 제화지부 지부장) “16살부터 명동하고 미아리에서 구두 일을 했다. 20살에 성수동에 와서 일했는데 벌써 35년이 됐다. 노동조합은 17년째 하고 있다. 예전에 경철호 대표님이 공장장 할 때 이종찬 대표는 옆 동료였다. 현장을 같이 오래 겪어왔기 때문에 대표님들 생각이나 처지도 잘 안다. 구두 일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안 바뀌고 있는 게 도급제다. 이 시스템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해결 못 한다. 제화산업은 개수임금제, 도급제 때문에 노동자들이 뭉치지도 못한다. 공장장 따라서 여러 명이 함께 움직여 다니니까 일감 받는 것에서 차별이 있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일감 받으려고 라이벌처럼 만들어 놓으니까 뭉치지 못한다. 출퇴근이 있고 월급제 하면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개수임금제, 도급제 때문에 안 되는 거다.”

 

다단계 유통구조, 생산공장의 해외 이전

 

- 공장 안에서의 처우 문제도 있겠지만, 제화산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박완규 “2018년에 제화 쪽에서는 나름 처우가 좋았던 사업장에서도 노동자 임금이 7년 동안 오르지 않았었다. 성수동 다른 공장은 15년 동안 임금이 오르지 않았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욱’하고 터져서 48일 동안 파업을 했다(제화 노동자는 형식적으로는 개인 사업자라 파업권이 없다. 정확한 명칭은 ‘일손 놓기’다). 그때도 우리가 파업하면서 개별 사장님들(하청 업체 사장)에게 임금 올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브랜드 본사 가서 했다. 우리도 사장님들의 현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본사에 간 거다. 납품단가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가가 오르면 최소한 따라는 가야 한다. 이런 게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경철호 “그때 파업해서 노동자들 임금이 오르니까 원청이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후로 하청 공장 여럿이 문을 닫았다. 물량이 엄청 줄었다.”

박완규 “제화산업이 워낙 이직율이 높지만, 지금 남아 있는 분들은 다 연세가 있으니까, 이제는 이직을 잘 안 한다. 짧으면 2~3년 일하고, 길면 12~13년 동안 같은 공장에서 일한다. 한 공장에서 길게 일하니까 퇴직금 문제가 생긴다. 물론 하청 업체 사장님들은 퇴직금 줄 수 있는 엄두도 안 날 거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그게 내 문제면 이렇게 방치할 수 있나? 퇴직금 요구하니까 일 년에 백만 원 정도 적립하는 걸로 합의하는 곳이 많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돈이다. 이런 문제는 제화산업 시스템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닌가? 모든 키는 유통업체가 가지고 있다. 유통 수수료가 보통 38~40% 정도 되는데, 여기서 1%만 내려줘도 바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경철호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사업이) 되어야 정리가 된다. 우리도 납품하면서 언제 (사업을) 접냐만 생각하고 있는데 퇴직금 문제까지 해결하기 어렵다.”

 

-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가져가고, 하청 업체는 어느 정도 마진을 남기나? 구조가 복잡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경철호 “구두 하나로 치면, 납품가가 보통 5만 원이다. 대체로 소비자 가격은 한 4배 정도 잡는다. 그러니까 20만 원 정도에 파는 거지. 여기서 백화점이 38%, 판매 매니저가 12%를 챙긴다. 우리가 납품비로 받는 5만 원 중에 하청 회사 마진으로 3천 원을 잡는다. 그럼 4만 7천 원이 남는데, 여기에 부자재, 인건비, 재고가 포함된다. 노동자들 인건비는 제일 낮은 곳이 (한족 당) 6,500원, 많이 줄 때가 1만 원 정도다. 또, 물량 주문이 많으면 마진도 줄인다. 200족 넘어가면 2천 원이다.”

이종찬 “우리(하청 업체)는 (다단계 유통구조에) 걸쳐만 있는 거다. 돈도 나를 거쳐만 간다.”

 

항목

소요비용

비율

비고

인건비

17,000

9%

노동자임금(6,500원×2명)

+관리비 4천원)

마진

3,000

2%

하청 업체 마진

원부자재

30,000

15%

추정치

원청

50,000

25%

추정치

백화점

76,000

38%

추정치

판매자 수수료

24,000

12%

추정치

판매가격

200,000

100%

추정치

 

물량이 늘어도 일할 사람이 없다

 

- 과도한 유통 수수료가 문제라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래도 많이 만들면 수익이 남지 않나?

이종찬 “(일할 수 있는) 물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20년 전만 해도 동대문에서 요청하는 물량이 하청 일감보다 많았다. 그때는 일감이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감이 없다.”

경철호 “동대문은 팔 수 있는 수량이 아주 크지 않으니까 (중국에서 대량 수입하지 못하고) 우리 같은 공장에 주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거기도 죽었다. 원청 업체는 우리하고 단가가 안 맞으면 중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긴다. 계속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감이 주니까 (노동자들에게) 뭘 해주고 싶어도 어렵다.”

박완규 “우리가 제화산업의 끝물에서 죽게 생겼으니까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는데, 계속 나오는 이야기가 물량 문제다. 그런데 사실 물량이 늘어나도 문제 아닌가? 일할 사람이 현장에 없다. 현장에 가보면 50대 중반·후반이 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없다. 주로 건설업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량이 들어와도 만들 사람이 없다. 소화 못 한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사업을 성장시키고 유지해야 하니까 물량 이야기를 하시는데, 더 중요한 문제, 그러니까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건 고민 안 하고 있다.”

 

-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나? 제화 노동자 수도 계속 줄고 있다.

이종찬 “새로운 사람은 안 들어오고, 있는 사람은 계속 빠져나가는 중이다.”

경철호 “공장마다 다르다. 잘 되는 데는 안 나가고 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나간다.”

박완규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제화산업)는 본질이 다르다. 현장에 가보면 노동자 평균 나이가 62~63세다. 2~3년 지나면 잘 되는 곳은 안 나간다고 할 수 있나?”

이종찬 “나간 사람들을 다시 데려와야지.”

박완규 “주로 건설 쪽으로 나갔는데, 그쪽은 8시간 일하면 월 400만 원은 번다. 우리가 하루 8시간 일해서 400만 원 벌 수 있나? 못 번다.”

이창열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일해야 겨우 400만 원 정도 번다. 중노동 해야 그 정도 버는 거다. 게다가 일 년 내내 일감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일감 없을 때는 수입도 없다.”

박완규 “신제품 샘플을 만들면 사업계획서를 올리는데, 단가가 높으면 원청이 다른 하청에게 일을 맡긴다. 하청 업체 사장들끼리 경쟁시키는 거다. 우리가 하루 10~12시간 일해서 400만 원 정도 벌 수 있는 게 일 년에 5~6개월밖에 안 된다. 이때는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사장님들도 힘들다.”

 

- 사장님이나 노동자나 힘들고 어려운 처지인 것은 비슷한 것 같다. 게다가 제화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성수동에서 4대 보험에 가입한 사업장도 3곳밖에 없다던데?

박완규 “2곳이다. 성수지역에서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4대 보험과 퇴직금이 있는 곳이 3곳 생겼는데, 그중 한 곳이 폐업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려면 월급을 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월급 개념이 없다. 남은 곳 중 한 곳은 280만원, 다른 곳은 230만 원 정도로 합의해서 금액을 정하고 4대 보험을 납부하고 있다. 이것도 노조 만들어서 겨우 얻어낸 것이니까, 아마 다른 지역에서는 제화 노동자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한 곳이 거의 없을 거다.”

경철호 “노동자들도 어렵겠지만 사장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매일 생각한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안 하고 싶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장들도 대부분 그럴 거다. 아마 99%~100% 같은 생각일 거다. 내가 사장이지만 일하는 사람이랑 똑같이 나와서 똑같이 들어간다. 뼈가 빠지게 일했다. 이러고 내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 아나? 일하는 사람들(제화공)과 별반 차이 없다. (돈을) 못 가져갈 때도 있고 더 넣어야 할 때도 있다. 성수동에는 그만두고 싶은 사장들이 거의 100%다.”

이종찬 “사업주 입장에서는 일이 없다고 비용이 안 나가는 게 아니다. 고정비는 계속 들어간다. 임대료도 내야 하고, 제화공은 아니지만 월급 주는 직원도 있다.”

박완규 “제화 노동자에게 만일 월급제를 한다면, 한 달에 얼마 받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해본 적이 있다.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평균 250만 원이더라. 다들 나이가 있으니까 아이들도 다 커서 먹고 살 정도면 된다고 보는 거다.”

이창열 “꾸준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한 달에 250만 원 꼴로 번다. 나머지는 그것도 안 된다. 우리는 사장님에게 4대 보험 들어달라고 했더니 들어주겠다더라.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 데리고 가입하러 가자니까 안 간대. 다 늙어서 4대 보험 들어서 뭐하냐고. (자기부담금) 조차 아까운 거다.”

박완규 “대부분 노동자가 63~64세인데, 향후 1~2년, 길면 3~4년 후면 일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노동자가 들어올 수 있느냐? 들어올 환경이 아니다.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 그런데 다 재정 문제다. 힘든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다. 본사나 유통업체가 자발적으로 국내 제화산업을 지키기 위해 돈을 낼까? 나라가 부분적으로 물량을 수입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최소한 자국 노동자가 생산하는 물량은 있어야 하지 않나?

세 가지 해법, 가능할까?

 

- 유통 단계의 문제부터 단가 문제, 노동자 처우 문제 등 복잡하다. 그동안 나라에서도 그렇고 성동구에서도 제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놨었다. 그런데 계속 해결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박완규 “구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제화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7~8년 동안 성과가 없었다. 56억 원인가 얼마 들였다고 하는데 내용을 보면 다 무슨 제화 거리 만든다고 건설물, 조형물 만든 거더라. 제화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 또, 성동구에 제화 관련 협회만 4~5개가 있는데 서로 자기 입지만 생각하면서 힘을 합치지 못했다. 오히려 협회가 다른 협회를 신고하고 갈등만 했지.”

 

- 과도한 유통 마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자가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수제화 거리도 만들지 않았나?

이창열 “지하철 밑에 수제화 부스를 쭉 만들어 놨다. 성수동에 공장이 있는 사람들, 사업주들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가격이 18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다. 몇만 원 더 주면 백화점에서 사지, 왜 노상에서 사겠나? 백화점 단가에 맞추니까 안 되는 거다. 나도 점포 열어서 해보려고 오래 구상했다. 주위 노동자들이 힘 모아서 월급제도 해보려고. 그런데 사업주가 아니라서 들어가질 못했다.”

이종찬 “내가 구두 일을 계속 한 것은 내 브랜드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내 브랜드 만들어서 거기 한 번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어렵더라.”

경철호 “나는 지금도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 안되면 공동 브랜드라도 만들고 싶다. 4~5개 업체 정도 합쳐서. 각자 잘 만들 수 있는 걸로 4~5점씩 모아서 같이 해보는 거다. 원청에서 지금처럼 일감 받는 방식으로는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지금은 물량도 줄고 있고 그나마 중국으로 다 빠져나간다. 구두 일을 계속한다면 내 브랜드를 가지고 돌파구를 찾고 싶다.”

박완규 “지금 국내 제화산업이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딱 3개다. 첫째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유통 쪽이 1%만 양보하는 거다. 그러면 지금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둘째는 국내 물량을 중국이나 외국으로 넘기지 않고 유지해 주는 거다. 그래야 먹고 산다. 마지막 셋째는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거다. 지금 제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복지나 근로조건이 다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돌파구는 찾아야 한다.”

 


토막 인터뷰

인터뷰 및 정리:  임지순 (제화산업노사상생협의체 전문위원)

 

소규모 제화업체를 운영하면서 상생협의체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L대표에게 ‘대담한 대화 - 영세제조업편’ 참여를 요청하였으나 아쉽게도 해외출장과 일정이 겹쳤다. 그와 별도 인터뷰를 갖고 제화산업 현실, 구조적 문제, 상생협의체에 거는 기대와 요구 등을 들었다.

 

- 제화산업에 종사하고 계신지는 얼마나 되셨고, 현재 운영하고 계신 사업체 규모와 운영현황은 어떠신가요?

"제가 악기를 전공했었는데, 신발이 너무 좋아서 부모님 반대에도 진로를 변경해 2000년대 초 제화디자이너브랜드에 입사했으니 벌써 20년쯤 되었네요. 몇 년 간 제화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퇴사 후 성수동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했고, 유명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협찬도 했습니다. 지금은 자체 브랜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몇몇 백화점에 입점해 있고 온라인 매장도 있습니다."

 

- 제화산업의 핵심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같은 기획자가 물건을 주문해야 생산을 담당하는 공장이나 숙련공이 살 수 있습니다. 공장 기계설비 투자나 작업환경 개선, 공간마련, 숙련공 퇴직금 문제 등 어느 한 부분을 지원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물론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각자가 요구하는 것이 다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요. 무엇보다 저희 같은 기획자가 주문을 넣어야 공장이 돌아가고 숙련공이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주문을 넣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제 경우 코로나19 시기 매출이 거의 없었지만, 계절이 맞춰 신제품을 출시해야 했고, 인건비와 운영비는 계속 들어갔어요. 그러느라 개인적으로 상당한 빚을 졌습니다. 제가 이정도니 1인 기획사는 더욱 사정이 어렵겠죠. 저희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이런 상황에서 공장, 숙련공 등 어느 한 부분만을 지원한다고 해서 제화산업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그렇다면 제화소공인으로서 현재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인력충원과 자금이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자체 디자이너 2명, 판매인력 4명 등 타 제화 소공인에 비해 적은 규모는 아니지만, 해외 수출까지 추진하고 있어서 일손이 너무 부족합니다. 회계와 세관 등 업무를 동생이 맡아주고 있고, 저는 경영과 영업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하고 있어서 온라인 매장 관리나 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웹디자이너나 생산매니저가 있으면 좋겠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개인적으로 상당한 부채를 지게 된 상황이라 신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저희가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품질관리 판매 전략이 인정받았는지 해외 유수 패션박람회나 해외 유명 백화점 팝업 스토어 참여를 제안 받고 있어요.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 해외 참여 제안도 응할 수가 없네요. 해외 패션박람회나 팝업 스토어 매장을 운영하려면 관세·해외 배송료·물류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 이를 개인적으로 감당하기가 벅차서 보류 중이에요. 해외 판매활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소공인은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 중소벤처기업부나 서울시 등 중앙부처 및 지자체가 성수동 제화산업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정책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지금까지 행정기관에서 제화산업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없이 지원했어요. 제가 사정상 개인사업자로 있다가 2019년 4월 신규 법인사업자로 등록했습니다. 그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업운영이 어려워져 신용보증기금 지원금을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3년간 재무제표를 제출해야 하는데, 신규업체에게는 없는거죠. 그래서 그때 정책자금을 지원받지 못했어요. 지금은 재무제표를 낼 수 있지만, 미납한 세금 때문에 지원을 못받더라고요. 코로나19 시기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납부하지 못했던 세금을 지금 분할납부하고 있는데, 그걸 완납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정말 정책자금을 지원받고 싶어요. 그런데 지원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제약이 있더군요.

그리고 노력하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현재의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공간입니다. 조성한 거리는 청년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값싼 중국산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가, 수제화 지원을 위해 마련한 공간은 정작 저희같은 제화관련 소공인들에게 열려있지 않아요. 현장을 잘 이해하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행정이 필요합니다."

 

- 제화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제화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백화점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백화점 납품 시 마진율은 10% 내외입니다. 하지만 백화점도 홍보, 마케팅, 인건비 등 상당한 비용을 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한국 백화점이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매년 추수감사절 이후 물건을 싸게 파는 연중 최대 규모 할인 행사)를 따라 할인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물품을 구매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팔리지 않은 물건들을 처분하는 대규모 할인행사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유통업체가 입점업체에 판매 공간만을 제공하고 있어요. 백화점에서 대규모 할인행사를 하면 저희 같은 입점업체가 비용의 상당부분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할인행사에 동참하지 않을수도 없고, 너무 힘드네요.

대금결제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깔끔하게 대금결제를 처리해 주거나 저와 같은 소상공업체에 일반 결제일보다 앞당겨 지급해 주는 백화점들이 있지만, 익익월 5일 보증금 10%를 제하고 지급하거나 익월 25일에 결제하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백화점뿐 아니라 홈쇼핑, 면세점,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판매를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곳들도 수수료가 상당합니다. 홈쇼핑과 면세점은 45% 이상, 온라인 쇼핑몰은 30% 이상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요?"

 

- 제화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상생이 가능할까요? 또 상생협의체에 기대하거나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상황이라면 조만간 성수동 제화산업은 무너질 것입니다. 제품 제작단가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와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저도 오랫동안 거래하고 있는 성수동 제화공장에 생산 주문을 하고 있지만,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언젠가 거래처를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화공장, 숙련공 등 각자의 입장이나 상황이 다르니 선뜻 제안하기 어렵지만, 상생협의체에 디자인·소재·부자재·유통 등 다양한 제화산업 주체들이 참여해서 각자 입장에서 제화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제화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탈리아나 일본처럼 적정 규모로 탄탄하게 축소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대부터 명품 브랜드까지 다양한 소비수요에 맞게 여러 가격대의 제화시장이 존재하는데, 그 속에서 성수동 제화산업은 고객 타겟층을 명확히 하고 제품관리와 브랜딩·이미지 관리까지 세심하게 신경쓴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수동 제화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수동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는 제화산업 소상공인들에게 공간을 지원하고, 소수만 공유하고 있는 정부 지원내용을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지원하며, 청년층을 흡수해 신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제화 관련 실무와 디자인 등의 수준높고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개설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상생협의체가 이러한 역할을 해내면 좋겠습니다."

 

* 제화산업의 현실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면 아래의 첨부파일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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