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대화 전문] 시민사회 현황과 과제

손우정
발행일 2023.11.20. 조회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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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 일시 : 23.11.14.(화)
  • 참여 : 조선희(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5년차) / 서민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 5년차) / 권복희(민주시민교육 곁 대표. 18년차)
  • 진행 : 손우정(대담한 대화)

 

- 오늘은 시민사회의 현실과 고민은 무엇인지, 어떤 과제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세 분이 모였다. 먼저 각자 소개를 부탁한다.

조선희(민언련 활동가. 5년차) “2018년 11월부터 민언련 인턴으로 활동했다. 활동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은 2019년 4월부터다. 언론 모니터링을 하다가 활동가의 길에 관심이 생겼는데 벌써 5년 차가 됐다.”

서민영(연대회의 팀장. 5년차) “대학생 때 YMCA 활동을 했다. 그러다 2018년 2월부터 상근 활동가가 됐고 2020년 4월까지 YMCA 대학생 조직을 담당했다. 연대회의에서는 2020년 9월부터 일했는데 총 연수로 치면 5년 차다.”

권복희(민주시민교육 곁 대표. 18년차) “청소년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2005년 흥사단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2006년에 흥사단 부설 교육운동본부 간사를 했다. 지금은 민주시민교육 곁이라는 단체 대표를 맡고 있다. 벌써 18년차가 됐다.”

 

시민사회 내부의 세대 차이, “경험과 세계관이 모두 다르다”

 

- 비교적 젊은 활동가 두 분과 고인물이 되어 가는 한 분이 참여했다. 우선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교육위원회에서 활동가 대상 설문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를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 설문조사 책임을 맡은 권복희 대표가 설명해 달라.

권복희 “시민사회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7월 19일부터 8월 20일까지 조사했다. 모두 101명의 활동가가 응답해 줬는데, 실제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고정 활동비를 받고 있는 임원,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활동회원, 그리고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후원회원이 모두 대상이다. 101명 중에 79명이 활동가라 사실 활동가들이 주로 응답했다. 서울이 많다.”

 

- 시민사회가 워낙 다양하고 사정도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결과를 보면 20년차 이상과 저연차 활동가의 응답에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조선희 “임원급이나 20년 차 이상의 활동가와 저연차 활동가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겪어보면, 악을 상대하는 방식이랄까?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파악하는 방식, 세계관이나 가치관, 경험이 전부 다르다. 세대별 사회적 인식차이가 반영되어 있달까? 5060세대는 2030 세대의 문제인식이 안일하거나 얕다고 보시는 것 같다. 거악과 싸우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이라고. 반면에 2030세대는 ‘내부의 민주주의부터 정립해야, 외부를 향한 활동도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기존 운동 방식은 상대를 공격해서 흡집내고, 그들의 비윤리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온 부분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상대와 진지한 대화를 해보지 않았는데 그냥 나쁜 사람들이니까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는 게 괜찮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대화조차 할 수 없으면 도대체 문제는 어떻게 풀지? 이런 의문이 많이 들었다.”

 

- 60대 이상의 활동가와 청년 활동가의 인식 차이, 문제를 보는 시각 차이를 말씀해 주신 것 같다. 중간에 4~50대는 어떤가?

조선희 “4~50대면, 대략 10년~20년 차 활동가들이 해당하는 것 같다. 사실 이들의 존재를 그동안 간과해 왔던 것 같다. 솔직히 40대는 50대, 60대의 지지자나 후원자라고 생각해왔다.”

권복희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을 몰랐다.  우린 낀 세대다. 영향력있던 시절의 선배(5~60대), 청년 후배 사이에 끼어서 어떻게 해야하나를 고민하는 세대다. 다만 선배들이 ‘야’라고 하면 ‘어’라도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문화가 있긴 하다. 거절하는 것을 잘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고, 선배들의 영향력은 알지만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싶은데 여러 상황으로 어려워하기도 하고.. 조심스러워서 소통을 잘 못하는 세대일 수도 있다.”

서민영 “40대 활동가 선배들을 보면, 대부분 학생운동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뭔가 그 윗 세대와 끈끈한 관계처럼 보인다. 옛날 전통적인 운동했던 분들이 그러지 않나? 선후배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막 토론하다가도 선배 그룹이 딱 등장해서 뭐라고 말하면 싹 정리되는.”

조선희 “맞다.”(웃음)

권복희 “아니다.”(분해함)

서민영 “그런 게 나쁘게 보인다기보다는 우리와 되게 다르다는 느낌이다. 2030은 설득이 되어야 하는데, 설득 과정이 있어야 뭘 결심하는데, 선배들은 설득 과정 없이도 뭔가 확 모이는 것 같은. 물론 경험에서 나오는 차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잘 이해가 안 된다.”

조선희 “좀 오래된 단체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좀 생각이 복잡해졌다.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40대 선배에 해당하는 연차 응답이 가장 부정적이다. ‘아, 많이 지치셨구나’ 싶다. 그동안 이들이 60~70대의 지지그룹이라고 생각했는데, 2030세대와 잘 대화하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30세대,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할 뿐”

 

권복희 “우리는 소위 586이라고 불리는 선배 세대와도 경험이 다르다. 이해는 하지만. 그런데 청년 활동가들은 다 같이 묶어 비판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조선희 “돌아보니 반성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웃음). 선배 세대에게 ‘그건 비민주적이에요’라고 지적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비민주적’이라는 표현이 오용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배들이 우리를 설득하지 않는다고 해서 2030세대가 ‘비민주적’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 것은 아니었을까. ‘선배는 비민주적이에요’라기 보다 ‘그 부분은 이해가 안 되는데 설명 좀 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인은 우리 세대가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2030세대에게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좀 더 설득해 주세요’ 이런 의미인데, ‘비민주적이시네요’라고 하면 4050세대는 이걸 너무 큰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서민영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권위라는 단어. 상급자는 직급과 경험에서 오는 권위가 있지 않나? 그래서 ‘권위가 있다’고 했더니 ‘내가 권위적이란 말이냐?’고 놀라고 당황하더라.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오해를 샀다.”

권복희 “‘권위’라는 말과 ‘권위적’이라는 말은 다르다. 누구나 권위는 가져야 하지만, 권위적이라는 말은 전혀 다르게 전달된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의 민감성이 있다. 나도 ‘민주시민교육 하는 사람이 그래도 돼요?’라는 말을 들으면 상처받을 때가 많다. 말한 분은 별 의미를 담지 않아도. 생각해 보면 그분도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서였을 수 있겠다.”

 

- 소통의 언어 부족은 중간 허리 세대인 40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앞에서 낀세대라고 했고, ‘지쳐있다’고도 했는데, 이들이 활발하게 소통하지 않으면 더 윗세대와 청년세대의 간극은 더 커질 수 있겠다.

서민영 “연대회의에 있으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40대, 처장급들이다. 그런데 표정부터가 지쳐 있다. 이야기해보면 너무 재미있고 친근한데, 막상 자기 조직 내에서는 젊은 활동가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하더라. 자기 단체 2030세대와는 말실수할까봐 밥도 잘 안 먹는다고.”

조선희 “우리 단체 사무처에는 중간 세대가 없다. 사무처 활동가 중에는 내가 제일 연차가 높고, 그 위가 바로 처장인데 86세대다. 그러다보니 더욱 소통이 부족했고 그러던 중 2020년 10월 노조를 만들었다가 많은 갈등이 있었다. ‘우리는 부하직원일뿐 동료가 아닌 걸까’하는 생각이 많이 든 때였다. 그러면서 서로 많이 지치기도 했다. 기분도 우울하고 분위기도 가라앉고 지쳤는데, 올해는 좀 괜찮아졌다.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고 나니까 내부가 더 뭉치는 느낌이었다.”(웃음)

 

“사회적 영향력? 영향력의 의미가 서로 달라”

 

- 원래 외계인이 침공하면 지구가 단결하는 법이다. 그럼 설문조사를 좀 더 살펴볼까?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상실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조사에서는 의외로 5년 차 미만과 20년 이상이 높게 나왔다. 물론 5년~20년 미만의 평가가 가장 박하고.

 

권복희 “20년 차 이상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경험을 이미 해 봤다. 그런데 중간 세대, 즉 5년 이상에서 20년 미만의 활동가는 그 윗세대의 영향력 행사를 지원만 했지 자기가 한 일로 느끼지 않는다. 성취감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서민영 “사회적 영향력이 뭐냐는 것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선배들은 어떤 결과를 바꾸는 것을 영향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내 친구들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넓게 전달되느냐? 그게 중요한 영향력이다. 친구가 뉴스에서 내가 나온 사진을 보내준 걸 보고 ‘음, 우리 일이 영향력이 있군’하고 생각했다.”

권복희 “그렇다. 우리 세대의 영향력이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단지 목소리가 전달되는 것으로는 성취감이 약하다.”

조선희 “5년 차 미만 활동가들이 사회적 영향력이 높다고 평가한 것은 현실에서 실제 경험해봤다기보다 희망이나 기대가 섞인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일반 회사에 갈 수 있었지만 시민운동을 선택해서 이 자리에 있다. 그런데 우리 활동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고 하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영향력을 경험할 틈이 없었다. 어떤 일을 하고 나면 평가해 보고 ‘아, 이런 영향력이 있었고, 이런 점이 부족했다’고 느껴야 하는데, 하나의 이슈가 끝나면 다음 이슈로 넘어가기 바쁘다. 과거를 복기하거나 평가할 시간이 없다.”

서민영 “평가 자체를 많이 안 한다. 어디에서 지원받아서 결과보고서에 ‘평가’ 내용을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잘 안 한다. 단순히 바빠서는 아닌 것 같다. 조금 여유 있는 곳에서 일할 때도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성과에 대한 피드백이 없다. 활동가들이 쉽게 지치는 이유 중 하나는 뭘 힘들게 마치고 나면 ‘수고했다’하고 끝이다. 그리고 또 다음 이슈로 넘어간다. 한 시간만이라도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나도 의미를 더 잘 찾을 수 있을텐데, 이건 개인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그리고 조직은 다음 이슈를 향해 달린다.”

조선희 “변화보다 남아 있는 문제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지원해서 포털에 이태원 참사 2차 가해 댓글을 막는 일을 진행한 적이 있다. 포털 댓글을 막는데 처음에는 많이 참여 안 했다. 두 번째 할 때는 1차에 안 한 곳들이 동참하더라. 3차 때는 2차 때 안 한 곳들이 참여했다. 아주 작고 소소하긴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도 분명히 영향력인데, 조직에서는 성과를 강조하기보다 '아직 동참하지 않은 언론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결과가 쓰였다. 성과보다 남은 과제만 중시하는 것 같았다. 우리 조직은 이런 작은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너무 작은 변화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영 “그 사례는 그쪽 처장님이 중요한 성과로 공유하더라.”

조선희 “그런가? 앞으로는 우리가 변화시킨 것에도 초점을 좀 맞추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싶고, 문제는 계속 쌓여가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권복희 “우리에겐 작은 변화를 주목하지 못하는 야박함이 있는 것 같다. 실제 중요한 영향력을 가졌어도 이걸 내부의 자부심으로 연결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아쉬운 부분이다” 

 

새로운 운동 방식은 가능할까?

 

- 시민사회가 시대변화와 요구에 잘 대응하고 있을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서민영 “좀 나눠볼 필요가 있다. 긴박한 의제는 잘 대응한다. 꼭 필요하면 아무리 바빠도 외면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여력이 없으면 다른 단체에 연락해서 ‘너네라도 해라’고 한다. 그런데 운동 방식은 안 변한다. 농성, 단식, 삭발···. 물론 아직은 이런 방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까 하는 거라고 이해는 하지만, 계속 반복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자, 이번엔 단식 했으니까 다음은 삭발인데 누가 할래?’ 이런 식으로 거의 매뉴얼화 되어 있다.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시민들이 정말 이런 걸 보고 마음을 움직일까? 너무 갇혀 있는 느낌이다.”

 

-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 봤나?

서민영 “아이디어를 내면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결국 하던 대로 하는 거다.”

권복희 “기존에 운동에서는 때가 되면 단식하고, 삭발하고, 행진하는 방식을 통해 효능감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바꾸어냈다. 그것이 새로운 운동방식을 생각하거나 시도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 해 본적이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효능감이나 확장력이 없는데도 말이다.  의제도 주체도 다양해진 시민사회, 운동의 방식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고 그런 논의와 시도를 함께 하고 싶다. 

조선희 “뭔가 이슈가 생기고 판이 벌어지면 일단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가 터지면 자동적으로 ‘기자회견 조직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금방 조직해서 연다. 그런데 기자는 안 온다. 그런데 왜 기자회견을 하는 걸까? 토론회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게 맞지 않나? 합의까지는 못하더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논쟁하는 게 토론회인데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만 부른다. 입장이 다른 사람을 부르자고 하면 당황해하는 경우도 있다.”

서민영 “새로운 시도를 하는 단체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청년 단체 중 신생 자원봉사 단체가 있는데 100명 모집하는 데 1분 걸렸다더라. 힙하게 기획해서 유튜브와 콜라보 해서 사람을 모았다. 그런데 단체 처장급들은 유튜버들도 잘 모르고 접촉하는 방법도 모른다. 사례를 공유하고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맨날 단식해야 한다고, 낙천낙선 운동하면 잡혀간다고 겁만 주고. 나는 그렇게 잡혀가면서 운동하고 싶지는 않다. 옛날 방식이다. 내가 옳은 일을 하는데 불법으로 잡혀갈 생각까지 하면서 활동해야 하나?”

권복희 “예전 선배들은 학생운동 할 때 수배와 구속을 불사하면서 가열차게 투쟁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사기업 취직 등 진로를 폭넓게 고민하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공익활동 영역으로 온 사람들은 구속, 수배 이런 것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것 같다.”

서민영 “진짜 무섭다.”

 

- 막상 정말 잡아간다 그러면 선배들도 무서울 거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제기해 볼 수는 없나?

조선희 “결정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어찌보면 우리 세대도 그 관성에 익숙해져 있는 부분이 있고. 굿즈 만들자고 하면 배지, 손수건, 수첩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기업하고 콜라보해서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제안하면 ‘어~’ 하면서 ‘토론회는 어떻게 됐냐?’고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새로운 상상을 시도할 틈이 없다.”

서민영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 40개가 떠서 인스타그램에 막 올라오고 화제가 됐다. 우리도 환경단체들 모아서 팝업스토어 열어봐도 재미있겠다고 했더니 다 박람회 하자는 거냐고 하더라.”

권복희 “조금 있으면 민주시민교육 박람회가 열린다.”(웃음)

서민영 “아이디어를 내면, ‘네가 의견 냈으니 실현 가능하게 책임져’라는 식이다. 같이 고민해주지 않고 ‘제안서 만들어와’ 이런다. 나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조선희 “회의는 대부분 실무자를 선정하고 업무를 배분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를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서민영 “연대체에서도 ‘예산 남아 있으니까 그걸로 집회 한 번 열자’ 이런 식이다. 전화 열심히 돌리면 한 30명 모인다. 그런 것보다 지역에서 뭘 해보자, 이런 거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보려고 해도 이미 다이어리에 일정이 딱 박혀 있다. 집회 열고 지역에서 토론회하고 촛불 문화제 열고 농성장 차린다는 식으로.”

권복희 “새로운 운동 방식이든 뭐든 아이디어를 내고 이걸 현실로 만들려면 함께 고민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네가 의견 냈으니까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서민영 “그래서 젊은 활동가들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짜 많이 한다. 동아리나 책모임부터 별도 프로젝트까지. 조직 내에서 소화를 못하니까 밖으로 나간다.”

권복희 “시민사회 처장들이나 팀장들이 다 너무 바쁘다. 당장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 지금 하는 것을 책임지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까 매번 했던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처장들의 입장에서 생각 해 보면 한편으로  ‘난 그걸 잘 모르니까 확신이 안 서.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MZ세대? 젊은 꼰대?

 

-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진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려면 약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빡빡하게 해치운다는 느낌으로 달려만 가는 것 아닌가?

권복희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을 나열해 보고 이게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인지, 그냥 조직 유지를 위해 관성적으로 하는 것인지 한 번 점검해 볼 때가 됐다. 오래된 단체는 특히 그런 것 같고. 최근 오래된 단체 하나가 해산했다. 초기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하고 해산한 것이다. 해산을 결심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하게 됐다. 단체를 해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선희 “시민사회는 일상적 운동 방식, 늘 해오던 것 등은 잘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예를 들어 기자회견, 집회, 성명 작성 등은 성과를 따지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냥 계속 한다.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나 또한 생각한다. 그런데 기존의 운동방식은 실패했냐 성공했냐 따지지 않고 계속 하지만, 새로운 사업이나 새로운 방법은 실패할 것 같아서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해오던 것, 해야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자가 그날 단체가 해야할 일들을 결정하게 된다.”

 

- 시민사회단체의 열악한 재정 때문에 여유가 더 없는 것 아닌가? 임금도 매우 낮다.

서민영 “임금은 크게 상관 없다.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최저임금은 맞춰 주니까. 그런데 문제는 중간이 없다는 것이다. 10년 차 활동가와 신입 활동가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조선희 “임금에 대한 기대치는 원래 낮기 때문에 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일의 효능감이다. 우리가 행사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내가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도 잘 못 받는다.”

서민영 “젊은 활동가 대부분 자기 조직 내에서 성장하고 싶어 한다. ‘나중에 니가 팀장 해라’, ‘처장 해라’ 하면 겉으로는 싫은 척 하지만 그 직책을 수행하려면 필요한 역량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는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잘 마련 못 한다. 일이 많다. 청년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고. 예를 들면 주말에 집회 가자고 하면 싫어할 것이라는?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안 와도 돼’라고 하는 게 배려라고 생각한다.”

권복희 “정말 그런가? 요즘 세대는 주말에 집회 오는 걸 싫어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조선희 “자기 권리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니까 과잉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 의미 있는 행사나 관련 단체 행사는 업무가 아니더라도 꼭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집회나 행사에 가서 이런 행사는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지 보는 편이다. 또 이 의제는 사람이 이만큼 모였고 저 의제는 사람이 저만큼 모였는데 차이는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가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인사도 나누고 네트워킹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서민영 “우리는 활동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자기 권리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양보하고 배려해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단체가 주최하는 집회를 하는데, 개인 약속 있다고 빠지는 젊은 활동가들도 있다. 겉으로는 이해하지만 매주 집회하는데 늘 오는 사람만 오면 너무 지친다.”

 

- 젊은 활동가들도 다양한 의견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MZ세대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지금 나누는 이야기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조선희 “4050, 6070에도 다양한 분들이 계실텐데, 하물며 우리는 더욱더 다양하고 다채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공익활동을 선택한 만큼 여기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꼰대'에 가깝다. MZ세대가 자기 이익만 챙기고 되바라진(?) 아이들로 평가 받는 건 싫다. 다만, 젊은 꼰대가 조직에 로열티가 높은 만큼 실무를 몰아주는 일이 많다. 젊은 꼰대와 젊은 비꼰대 사이가 벌어질 수 있다.  

서민영 “젊은 꼰대는 단체마다 한 명씩은 있다. 사회에서 MZ세대라고 특정한 성향만 부각한다. 다른 단체 처장님은 내가 이런 이야기 하면 ‘요새 청년 활동가 같지 않아’하고 좋아한다. 그 단체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 텐데.”

권복희 “선배들이 볼 때 우리 세대(97세대, 90년대 학번인 70년대생)는 순응적이다. 선배들한테 순응하고 후배들에게는 말을 막 못하고. 젊은 꼰대 말고 보통의 2030세대 활동가는 어떻게 선배들에게 문제도 쉽게 제기하고 싸우기도 할 수 있나?”

서민영 “조직문화 차이가 크다. 내가 만난 젊은 활동가 중에는 조직 내에서 잘 싸우고 의견이 센 사람들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하는 게 자기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더라. 운동 방식이 평화롭지 않다는 생각은 들지만 자기 신념은 있는 것 같더라. 그런 건 인정해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왜 말을 꼭 저렇게 하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난 젊은 꼰대라.”

 

- 공익활동이라는 것이 일반회사의 업무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러나 청년 활동가들은 활동을 업무, 노동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서민영 “조직에 대한 애정도 선배 세대와 다르다. 단체에 오래 있던 처장급들이나 선배들은 조직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남다르다. 그러나 신입 활동가는 조직의 역사, 의미 이런 걸 잘 모른다. 충분히 설명해 줘야 하는데 조직이 바쁘다보니 내부에서 교육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견도 잘 듣지 않고 묵살한다. 그럼 자기 조직이 ‘사랑하는 나의 조직’이 아니라 그냥 회사가 되는 것이다. 활동을 노동으로 보게 된다.”

권복희 “조직의 미션과 비전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창립정신을 지금 현실에 적용하려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지금 현실에 맞게 고치고 새로운 활동가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서민영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나는 운 좋게 들을 수 있었다. 단체의 2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 조직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신입 활동가들은 구인 광고보고 들어온다. 당연히 조직에 대한 이해가 선배들보다 떨어지고 애정이 약할 수밖에 없다. 선배들이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전환의 길? 새로운 네트워크, 대화의 공간

 

- 이런 이야기가 나온 지도 꽤 되었다. 그러나 별다른 해결책 없이 계속 시간만 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을까?

권복희 “2014년에 시민사회에 ‘변화의 리더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0년 뒤에 각 단체 리더십 역할을 할 사람들로 모아보니 20여명이었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 실제 사무처장이 되었고 서로 고민도 나누고 힘든 일은 돕는 끈끈한 관계가 됐다. 이 사람들이 요즘 하는 고민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네트워크, 전문성으로는 선배들처럼 활동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곧 단체 책임자가 될 텐데, 당장 선배들처럼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다. 단지 활동가가 적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활동가가 많은 단체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서민영 “조직 내에서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워크숍으로는 안 된다. 말만 워크숍이지 실제로는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인간적인 고민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유대감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희 “유대감을 나누는 것도 한계다.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리 워크숍 가고 대화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냥 ‘저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같은 동료끼리는 다르다는 걸 잘 인정 안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를 많이 이야기해야 조직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그냥 대화한다고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권복희 “우리가 이런 대화를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한 적이 꽤 오래 됐다. 내 기억으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지 모여서 이야기한 것이 마지막이다. 시민사회가 제기한 많은 의제가 실제 정책으로 채택되면서 그 다음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이슈 중심으로 싸우기만 했다.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와 세대가 다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방식은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성찰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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