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대화 전문] 진보정치, 어디로 가야하나?

손우정
발행일 2023.08.09. 조회수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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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23.7.25.(화) 오후 2시

■ 참석

김창인(청년정의당 대표)

이상현(전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기후정의 활동가)

이용희(지역정당네트워크 대표)

박지하(서울 청년진보당 대표)

■ 참관

김상철(시시한연구소)

정경윤(민주노동연구원)

나영(은평민들레당_사진 촬영)

■ 진행·정리

손우정(대담한 대화)

 

- 대담한 대화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견을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가 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이번 대담한 대화는 진보정치, 대안정치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모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형식의 정계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데, 소수정당, 원외정당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서로 처음 뵙는 분들도 있으니 각 정당의 현재 상황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 박지하(진보당) “진보당은 올해 안에 10만 당원을 만드는 것과 2024년 총선에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 현재 당원 수가 얼마나 되나?

= 박지하(진보당) “현재 9만 7천여 명 정도다. 지난해는 대선 직후 지방선거를 치르다 보니,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강해진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다. 당시에는 원외 정당이었지만, 지방선거에서 21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내년) ‘총선에서는 진보당의 존재감이 느껴지게 해보자’,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자세가 있다. 그래서 내년 총선 준비에 빨리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당원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 이상현(녹색당) “전직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었는데, 현재는 녹색당 전국위원이 아니라 총선과 관련한 논의를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녹색당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2년 창당했는데, 벌써 10년 넘게 지났다. 그동안 지방의원이 녹색당에 가입한 적은 있지만, 녹색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은 없다.”

 

- 지방의원 중에서 녹색당원이 있지 않았나?

= 이상현(녹색당) “의원이 녹색당에 가입한 적은 있지만, 녹색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은 없다. 우리도 의원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진 당원들이 많다. 그래서 다른 정당과 선거연합도 열어두고 생각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의 총투표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당원들이 직접 토론해서 의견을 모으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창인(정의당) “정의당은 내부에서 재창당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공식 입장은 정의당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당을 추진한다는 것인데, 어떤 신당이냐를 둘러싸고 논쟁과 균열이 일어나는 중이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정의당이 지난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대중에게 심판받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중으로부터 심판받았는데, 여기서 정의당이 덩달아 심판받았다고 본다. 기성정당에 대한 실증과 비호감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정의당 또한 기성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 이용희(지역정당 네트워크) “지역정당 네트워크는 재작년 창당한 ‘직접행동영등포당’, 작년에 창당한 ’은평민들레당’, ’과천시민정치당’, 지역정당으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진주같이’와 함께 지역정당 운동을 새로운 대안정치의 방향으로 보고 있다. (김창인 대표가 말한 것처럼) 기존 진보정당도 이제는 기성정당처럼 인식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대중이 진보정당이 제시하는 해결책과 대안에 대해 실망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진보정치도) ‘정치하는 것들’로 치부되면서 대의제 정치에 대한 혐오를 함께 받고 있는 것 같다. 지역정당 네트워크는 기존 정당으로 등록되지 않으면서, 정치를 고민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틈을 만들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진보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민사회가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이것이 좋은 정치를 위한 발판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 각자 처한 조건과 환경에 따라 내부 상황도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렇지만 진보정치 전반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인식은 비슷하다. 진보정치가 기성정당의 대안임을 자부해 왔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 김창인(정의당) “정의당은 제도권 안에서, 진보적 요구를 정치라는 행위를 통해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만든 정당이다. 20년 전 진보정치에는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은 있어야지’라는 말이 주는 뜨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 만들어보자는 말이 대중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6공화국 체제에서는 진보정당이 제도권 안에서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거나 민주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은 6공화국 체제가 끝났다. 이런 방식으로는 더 이상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 박지하(진보당)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진보정당의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할 부분이 당연히 있다. 그러나 만일 대중이 진보정당을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진보정당에 가입하지도 않을 것 아닌가? 겨우 한 명이 국회의원이 되어봐야 뭘 하겠냐고 생각한다면 아예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다. 진보당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한 명 당선시키려고 전 당원이 전주로 내려갔다. 그래서 택배노동자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각자의 고유한 역할이 있지만, 권리를 위한 법을 만들 때 같이 협력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라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절실하다.”

= 김창인(정의당)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할 때다. 지금은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진보정당하고만 협력하는 시대가 아니다. 법안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논의들은 민주당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진보정당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한 시대, 한 시점이 종료된 것이다.”

= 이용희(지역정당) “진보당이 (지난 보궐선거에서) 한 방식은 소규모 지역에서는 가능하지만, 사실 이런 게 진보정치를 갉아 먹었던 방식 아닐까? 작은 지역에서 다수를 점해서 자기 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방식은 (전주 보궐선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기성정당처럼 퇴화한 방식이다. 이제는 풀뿌리 시민사회가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정치 플랫폼이 중앙당이 되는 풀뿌리 정당, 지역정당의 연합체로 가야 한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는 방법이다.”

= 이상현(녹색당) “진보정치가 점차 힘을 잃는 것은 대중의 평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다. 녹색당은 출발이 다르지만, 다른 진보정당은 대부분 민주노동당이 뿌리다. 그런데 기존 진보정당은 계속 쪼개지고 분열되어온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된 힘도 많이 약화 됐다. 노동운동도 많이 분화되어 있고, 시민사회도 의제별로 흩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진보정당 역시 분화되거나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잘게 나뉘어 소수집단이 되니까 힘이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진보정치 내부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집권 세력과의 협력이나 거버넌스 기구에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진보정치 세력 내 격렬한 갈등도 벌어졌다. 기후정의 운동에서 ‘반자본주의’ 논의가 다시 등장했지만, 공공요금에 관한 논쟁에서 보듯 지금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분석틀과 해법이 유효한지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힘도 모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진보정치이고, 지금 진보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이 큰 상황이다.”

- 내부의 혼란도 크지만, 대중이 점차 진보정당을 기성정당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 이상현(녹색당) “힘이 없으니까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정당들이 정치연합이나 네트워크로 공동의 전망과 계획을 구상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집중된 힘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투기를 막으려면 정치적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진보정당은 의석도 없거나 적어서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 단체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힘 있는 정당에게 의존하려 한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반대의 경우) 민주당도 나서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다수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도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녹색당을 예로 들면, 대중들은 ‘착한 정당이지만 찍고 싶지는 않다’, ‘대중의 욕망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을 내세운다’, ‘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평가가 있다. 어떻게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인가? 녹색당의 정치가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존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 김창인(정의당) “힘이 없어서 선택을 못 받는 것과 선택받지 못해서 힘이 없다는 것은 돌고 도는 문제다. 다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이미 진보정당에 힘을 줘 봤다’고 생각할 것 같다. 물론 정의당과 진보당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대중들의 민주당 주류에 대한 인식도 비슷할 것 같다. 대통령도 연속해서 당선시켜줬고, 또 한 번 더 했지 않나?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은 180석이 아니라 200석이 있었으면 통일도 하고, 최저임금도 1만 원 넘기고, 소득주도 성장도 하고 그랬을 텐데, 힘이 모자라서 못했다고 억울해한다.

진보정당 주류 활동가들에게도 이런 비슷한 인식이 있다. 10석 줬으면, 원내 교섭단체 만들어 줬으면 세상 바꿨을 텐데 하는. 그러나 대중은 이미 도와줄 만큼 도와줬다고 생각할 거다. 정당법도 바꿔야 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닌 것 같다. 다른 대안에 대한 상상력과 지향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무상의료처럼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청사진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없다.”

 

- 진보정당이 대안으로 선택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넘어선 대안적 비전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 이용희(지역정당)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지금의 국가 외부에서 사회구조를 상상하는 능력 자체가 없고, 그나마 있었던 것도 다 없어진 상태다. 대의정치도 비슷하다. 선거를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없다. 그렇지만 그런 경계를 넘어선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진보정치가 주장해 온)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통 등이 더 이상 선거에서 의제로 등장하지 못한 지도 꽤 되었지만, 실제로 구현된 정책도 있다. 그러나 제도화되지 않은 정당에 대한 대중의 언어는 아직 만들지 못했고, 지역정당운동도 그런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부여할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판을 만들어 놓으면 사회적 필요와 세력은 모이게 되어있다.”

= 박지하(진보당) : “선거 제도 문제도 있고, 상상력 문제도 있다. 진보정당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그나마 존재하는 진보정당끼리 갈라져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진보당에 가입하시는 분들 중에도 위성정당 같은 데 들어갔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당선이 안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니까. 진보정당에 기회를 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채 진보정당이 갈라져 있다. 선거에 나가 거리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보면, (여러 개로 나뉜) 진보정당을 구별하지 못한다. 각각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다.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일, 기성정당과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 이상현(녹색당) “녹색당도 지역정당의 취지와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각 지역정당의 수평적 연합이라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중앙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집중화된 힘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한 정당 내에서도 다양하고 쪼개져 있는 의견들을 민주적으로 조율하고 힘을 모으는 게 상당히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데, 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진보정당들의 네트워크는 더 어려운 문제다. 어떤 체계와 원칙으로 공통의 힘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다.”

 

- 진보정당이 의석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석이 없거나 적은 지금의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도 중요한 것 같다. 진보·개혁적 시민사회는 점차 반(反)윤석열 투쟁(이하 ‘반윤 투쟁’)으로 흐름이 모이는 것 같은데, 진보정당은 이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고 어떤 역할을 고민하고 있나?

= 김창인(정의당) “반윤 투쟁은 민주당이 제일 잘한다. 여기에 정의당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심판해야 할 기성정당이다. 그런데 진보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다른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 박지하(진보당) “반윤 투쟁을 민주당이 제일 잘한다는 진단에는 이견이 있다. 이건 왜 진보정당이 반윤 투쟁을 하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반윤석열 투쟁이 아니라 생존 투쟁이고 민주주의 투쟁이다. 윤석열 정권이 가장 심하게 탄압하고 있고,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가장 힘든 것이 민주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인가? 아니다. 투쟁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은 1천 명이 넘게 소환장을 받고 수사를 받고 있다. 이게 단순히 반윤 투쟁이라면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면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이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투쟁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김창인(정의당) “진보정치가 20년 동안 활동하면서 만들어진 매뉴얼 같은 것이 있다. 나는 이게 ‘관성’이라고 생각한다. 반윤 투쟁도 내용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투쟁 자체는 관성화된 맥락으로 느껴진다. 과거 반MB(반이명박)투쟁, 반(反)박근혜 투쟁의 맥락이나 매뉴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성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진보정치의 상상력을 닫아 버린다. 이것이 진보정치가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 이상현(녹색당) “예전 방식이 아니라 창의적인 방식으로 기존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게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래서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모아 내고 어떤 장소를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던 방식을 계속하는 것도 있다. 물론 새로운 방식으로 갈 수도 있지만, 기존의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기존 방식이 문제가 있으면 대안을 제시하고 논쟁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가게 하는 것이 정치적 실력이다.

반윤 투쟁은 반박근혜 투쟁과는 양상이 다르다. 반박근혜 투쟁은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으로 시작해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중총궐기가 일어났고, 노동자 투쟁이 이어지고 대학가에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었다. 이런 흐름이 아래로부터 하나둘씩 끌어올려진 것이 2016년~2017년 촛불투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반윤 투쟁은 민주당이 먼저 시작했고, 어떻게 보면 거대 양당의 정치 싸움으로 보인다. 사람들도 피로감을 느낀다. 여기에 진보진영이 다 결합하는 게 좋은 결과를 낼 것이냐?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선 긋고 따로 가기보다 ‘이렇게 가자’고 주장을 하면서 끌고 가는 힘이 필요하다.”

= 김창인(정의당) “방법에 대한 이견이 있다거나, 참신한 투쟁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운동이, 우리 존재가 대중의 상상력을 가로막은 존재가 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반MB, 반박근혜 투쟁을 열심히 해왔고 실제로 정권교체도 해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기대 이하였고 대중들 또한 실망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게 된 것인데, 등장과 동시에 ‘아, 조만간 윤석열 퇴진 투쟁하겠군’ 생각했다. 예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관성이 지긋지긋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퇴진하면 그다음은 무엇을 상상하게 되나? 이재명 대통령 말고는 없다. 차라리 ‘6공화국을 부수자’고 하면 그다음의 ‘7공화국’이 뭔지에 대해 상상할 수 있지 않겠나? 반윤 투쟁이 새로운 정치가 나타나는 걸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

= 이용희(지역정당) “진보정당도 지독한 타성이 있는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여러 활동에 참여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활동 과정에서) 정치적 효능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쉬운 싸움은 양당의 성과로 가져가지만, 진보정당은 그만큼 어렵다. 소수자를 대변하다 보니 그런 면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함께 한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출구전략을 통해 소소한 승리라도 얻어 본 경험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뒤에 더 큰 이슈가 와도 참여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왜 인원이 줄어드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사람이 모인다. 왜 새로운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반윤 촛불집회도 지역에서 창의적으로 뭘 해보려고 해도 관성적으로 위에서 딱 정해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지역의 집회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사람이 나올지 고민하기보다 지역 조직가들의 결과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 이제 현실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어쨌든 내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창당 흐름도 여기저기 감지되고 있다. 기성정당의 대안을 자임하는 진보정당으로서는 이런 흐름이 더욱 불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준비 중인가?

= 이용희(지역정당) “전북 지역 같은 경우 8월 말 정도에 창당 준비위를 꾸리고 지역정당을 내세워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제도 정당이 아니더라도 총선에서 득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어설프게 비례 바라보고 상층 논의만 하는 분들에게 손에 잡히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 대신 철저히 지역의 상황에 맞게 준비하도록 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물론 정당법상 출마는 무소속으로 하겠지만, 정치활동은 (가)전북 지역당 이름으로 하려고 한다. 다른 정당과 연대하는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북 지역은 민주당에서 공천받지 못한 후보들이 합종연횡할 텐데, 독자적으로 지역을 위한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 박지하(진보당) “진보당은 지역에서부터 거대정당들보다 빠르게 총선을 준비하려 한다. 주민대회, 정책 제안 운동 등을 통해 시민들을 직접 꾸준히 만나왔다. 다른 진보정당과의 선거 연대에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당원들과 성실하게 채비하는 게 우선이다.”

= 이상현(녹색당) “녹색당의 총선 준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기후정의, 사회 공공성에 기반한 정책과 그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알고 있다. 진보당 후보들이 꾸준하게 지역 활동을 하면서 총선에 나가는 건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녹색당 또한 지역 활동을 기반으로 지지를 이끌어 내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후 위기라든지 시대 상황이 녹색당의 가치나 의제에 부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평소 주민에게 녹색당의 의제를 알리고 정치활동을 해 나가야 한다.”

= 김창인(정의당) “정의당의 공식적인 결정 사항은 신당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누구와 할 것인가? 첫째는 정의당 가치에 동의하는 세력, 둘째는 양당 체제의 기득권을 극복할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정의당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당은 총선을 단지 후보를 당선시키는 선거가 아니라 진보가 재구성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존의 것을 다 내려놓고 시대에 대한 진단, 사회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재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에서 성역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진보라는 성역을 쌓아 올리며 스스로 갇히는 방식으로 활동해 왔다. 대중은 이걸 기득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려가 드는 것은 내년 총선이 정권 심판 구도가 된다면 이런 문제의식이 묻혀 버린다는 것이다. 정권심판론, 윤석열 퇴진 총선은 퇴행이다.”

 

-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방향과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특별한 방향이 있나?

= 김창인(정의당) “기존의 진보정당끼리 이합집산하는 것이 진보의 재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과거의 관점에서 문제를 약간 개선하려는 전통적 관점, 고정된 틀 안에서의 이야기다. 새로운 제3지대에서 우리가 다시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총선일 수 있다.”

= 이상현(녹색당) “정의당 내에서 제3지대나 새로운 권력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득권’이라고 호명하는 민주노총 등과 선을 긋고 새로운 영역을 만들겠다는 것 같은데, 거기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인다. 예를 들어 라이더 유니온 같은 경우는 플랫폼 배달 노동자, 기본소득당의 경우는 알바 노동자라는 구체적인 집단이 보인다. 그 단체나 당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그 조직이 누구를 대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제3지대는 대체 누구를 지지 기반으로 삼고, 누가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상상하는 건가?”

= 김창인(정의당) “앞으로 논의하고 만들어갈 내용이니 당장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없다. 다만 민주노총과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틀을 벗어나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내에서 제3지대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워낙 많다. ‘더 개혁적인 신당’이 필요하다는 분들,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을 주장하는 분들, ‘진보정당 중심으로 수혈’해서 가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만큼 모두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논의가 붕 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같이 논의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 박지하(진보당) “제3지대에 누가 있느냐, 거기에 누가 가느냐는 중요한 질문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진보 4당의 연대는 각각을 존중하되 힘을 모아 뭐라도 해보자고 만든 틀이다. 편협함, 새로운 상상력을 제한하는 관성을 극복하자는 주장과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자는 주장은 조금 다른 의미다. 진보 4당은 배제된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화를 위해 만든 틀인데, 선거를 앞두고 이것을 흐트러뜨리고 힘을 모을 수 있느냐는 의문도 든다. 아까 (김창인 대표가) 대중이 자신들은 기회를 줬는데 왜 아무것도 바꾸지 못 했냐고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진보정당들은 일상에서 이런 점을 반성하고 관성을 극복하는 과정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결국은 선거에서 겸손히 평가받는 태도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서 뭉쳤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된 평가나 성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이상현(녹색당) “비슷한 생각이다. 녹색당도 처음에는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생존권, 생태, 환경 의제를 꺼내고 청년, 여성, 영화감독, 음악가 같은 사람들이 총선 후보로 나갔다. 새로운 사람들을 대변하겠다는 것이 명확했다. 페미니스트 시장 선거를 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조직력이 너무 부족했고 같이 할 사람도 적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이라고 내세워도, 설령 사람들이 새롭다고 보더라도 한계는 분명하다. 진보정치의 관성 문제도 성찰해야 하지만, 새롭다고 내세우는 것을 실현할 역량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사실 정의당이 무엇을 반성하고 재창당까지 하는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을 것이다. 제3지대론의 하나인 ‘세 번째 권력’이 제시하는 방향과 주요 인사가 내세웠던 직무급제 등 정책을 보면, 기득권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이해하지만, 지금의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변화의 전망을 제시하기에 적절한 논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 진보의 재편을 위한 시도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시도가 대중으로부터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마도 내년 총선이 그런 평가가 진행되는 시기인 것 같다. 단순히 당선 말고,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 이상현(녹색당) “녹색당이 기후정의 운동을 실제 실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중앙 정치에서의 실력도 필요하겠지만, 지역과 자기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어떻게 활동하냐에 따라 대중이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판단할 것이다. 총선에서 어떻게 기후정의 운동의 요구를 정당이라는 틀로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녹색당원인 나의 관심사다. 진보정치 세력들이 실력이 없고 힘을 모으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견이 다른 것은 조율하고 공동의 절충안이라도 내어서 조금이라도 현실을 바꿀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시민에게 신뢰를 되찾는 방법이고 절박한 과제다.”

= 김창인(정의당) “그동안 진보정당은 국민의힘의 퇴행을 저지하고, 민주당의 진보적 의제를 견인해서 진보정당의 파이를 키우는 것, 그리고 국민의힘이 사라지면 민주당이 보수, 진보정당이 진보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대전략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이런 경향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넘어서려는 세력 간의 전선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과거에 어떤 정당에 속해 있느냐는 크게 상관없다. 총선이 낡은 시대를 종료시키기 위한 정치세력을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20년의 진보정당을 21년으로, 22년으로 더 연장하자는 것만으로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진보정치가 주장해온 가치와 노선 중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릴지 토론해나가면서, 다른 2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진보정치가 필요하다.”

= 박지하(진보당) “진보정치의 도전이 끝났고, 새로운 전선이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난 한창 싸우고 있는데? 끝났다고? 무슨 소리야?’ 하면서 황당해할 사람도 있다. 진보 내에서 새로운 전선을 만들자는 주장은 좀 위험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반윤 투쟁은 다수 민중에게는 생존 투쟁이다. 민생과 관련한 여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라는 것이 시민의 요구 아닌가? 그동안 선택받지 못했던 부족함은 계속 채워 나가자. 더 많은 시민을 만나면서 진보정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다. 기존 정당들이 하던 것처럼 선거에 맞춰서 헤쳐모여 할 때가 아니다.”

= 이용희(지역정당)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양당 구도를 보면 예전보다 논의 수준과 의제 선정이 퇴보하고 있다. 진보정당도 함께 퇴보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언급하셨는데, 예전 같은 방식으로 정파들이 자기들끼리 만나서 협의하고 결론 내리고 설득하는 시대는 끝났다. 진보를 재구성한다면서 어느 지역은 누가 맡고 하는 방식은 퇴행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부터 진보적 의제를 가진 세력들이 모여서 민주적으로 총선 후보를 내는 방식이라면 희망이 있다고 본다. 결국은 지역을 기반으로 밑에서부터 올라와야 한다. 직접행동 영등포당은 아직은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없지만, 지역에 그런 테이블이 열린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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