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대화] 저출생 문제, 육아정책만으로는 답이 없다(대화 전문)

손우정
발행일 2024.02.22. 조회수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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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일시 : 2024년 2월 16일(금) 오후 3시

■ 참여자

- 윤정인(36세. 화학분야 벤처기업 CEO. 초등학교 4학년 자녀)

- 전찬영(32세. 초보 아빠. 자영업자. 20개월 자녀)

- 오은선(36세. 워킹맘. 만 5세 자녀)

* 진행: 손우정, 박미혜(대담한대화)

* 전문가 인터뷰: 박은정(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 바쁜 가운데 대화 자리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 오늘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저출생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낮은 것은 보편적 현상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 가운데서도 좀 심각한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문제가 왜 일어나고 있다고 보나?

윤정인(벤처 CEO) “사실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지 않나? 특히 여성으로서 전문직 일을 하려면 아이를 낳기 어렵다. 결혼하기 전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결혼하면 안돼’, ‘결혼 안해도 괜찮아’ 이런 말이었다. 우리 젊었을 때는 ‘골드미스’라는 말도 유행했고. 여고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연구직으로 있다가 결혼하면서 계속 일을 못하니까 다시 사범대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된 분이었다. 내가 연구직을 하고 싶다니까 연구원 되고 커리어 쌓고 싶으면 결혼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성인이 되니까 정말 그런 세상이다. 애를 낳아보니 행복한 가족을 꾸렸다는 느낌보다 내 인생이 동동 거리는 느낌이다. 일도 바쁘고 육아에 집안 살림까지, 돌봄에 관한 요구가 다 나에게 몰려오는 느낌? 남편은 오히려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더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든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쪽 일(연구직)은 당연히 미혼 여성이 많다.”

오은선(워킹맘) “요즘 청년들은 학자금도 내야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지 않나? 좋은 직장을 구해야 결혼을 꿈꿀 수 있다. 좋은 집은 아니더라도 살 곳은 있어야 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기반이 있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결혼도 미루게 되고 출산할 정도가 되면 이미 노산으로 접어들 나이가 된다. 그러니 당연히 출생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지 않나? 청년들은 결혼해서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건이 좋고 윤택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살면서 세금도 많이 내는데 혜택은 결혼한 사람, 아이 낳는 사람에게만 준다. 그러니까 양육자에 대해 ‘팔자 좋다’는 혐오적인 감정까지 생기는 것 같다. 양육자에 대한 이해도 낮고 피해 의식이 있다. 노키즈 존이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시각이 반영된 것 같다. 요즘 청년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삶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결혼해도 딩크족(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을 선택하고.”

전찬영(초보아빠) “결혼하면 상대적으로 남성이 이득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여성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훨씬 많이 부담하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보지만, 남성이 사용한다고 하면 아직 부정적으로 본다. 남성은 육아보다 승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내가 30세에 결혼했는데, 하고 보니까 친구 10명 중 결혼한 사람은 나 포함해 2명밖에 없더라. 어린이집에서 하는 아빠 참관 수업을 갔더니 아빠들이 다 40대 이상이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이 때문에 둘째는 못 낳는다고 하더라. 친구들도 애를 왜 낳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 30% 정도는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했더라.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애한테 돈도 많이 들어가고 현실은 무한 경쟁 시대고 정치권은 싸우기만 한다.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혐오가 청년층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나도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생명 하나 더 낳아서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를 낳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다들 아이가 있다. 후회하는 건가?

전찬영 “후회? 안 한다. 난 남성이니까.(웃음) 원래 결혼도 출산도 빨리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 고향 떠나 혼자 살아보니, 혼자 못 살겠다고 느꼈다. 빨리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고,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처가댁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었다. 또 애가 너무 이쁘다.”(웃음)

오은선 “아이를 생각하면 낳길 잘했다. 그런데 나를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된다. 저도 또래에 비해 일찍 아이를 낳은 편인데, 주위에서 너무 일찍 출산해서 아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 활동이나 공부를 다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승진하더라. 이 사람이 아빠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걸 보니까 괜히 울컥하고 우울했다. 나는 뭔가 싶고. 그래도 아이를 보면 사랑스럽다.”(웃음)

윤정인 “2011년 박사 1년 차에 결혼했는데, 이공계 연구직이니까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신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서 결혼했다. 대전에서 일할 때였는데, 집값이 매우 쌌다. 나랑 신랑이 모아둔 2천만 원에 대출받은 돈을 합치면 집을 살 수 있었으니까. 주거가 안정되니까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우리 직종에서는 박사 과정 때 결혼하고 박사 후 과정에 아이를 가지라는 말이 있다. 그래야 스케줄에 맞는다. 그런데 난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애가 생기면서 인생 계획이 꼬였다.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애를 낳지 않을 것 같다. 전에 일하던 연구원 30명 중에 여자 박사는 단 두 명이었다. 전문직 여성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일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아이가 있어 행복하고, 엄마가 된 것을 지금은 후회하지 않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선택지에서 엄마의 삶은 빼고 싶다.”

전찬영 “만일 이 자리에 우리 아내가 참여했다면 나와 다른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겠다. (결혼과 출산을) 후회한 적이 있다고. 지금 아내는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출산하면서 그동안 준비하던 여러 가지를 포기했다.”

윤정인 “대학 졸업후 여성인재라 불리던 제 친척 고모님들은 결국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됐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이며 친척들 모두 ‘너는 평생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하셨다. 주변에 출산과 동시에 그냥 사라져 버리는 여자들을 보고 살았다. 내 경력이 꺽이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잘 아니까 ‘아이를 위해 살아라’와 같은 말은 못한다.”

 

- 그동안의 설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출산이 축복보다 설움이 되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안 떨어지는 게 이상한 것 같다. 그래도 정부나 국회에서 끊임없이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정책은 도움이 되나?

윤정인 “지금 우리가 양육 환경을 좋게 만들겠다고 무상보육하지 않나? 그런데 한국사회가 참 이상한 건 무상보육한다고 이 정도 돈을 받으면 다른 쪽으로 그 정도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유치원도 기타경비라고 해서 원비 외에 가방 비용, 특별활동 비용, 교복, 방과후, 학습지 등 비용을 내야 한다. 사실상 무상보육이 아니다. 정부 지원금이 눈먼 돈이 되는 거다. 민간 어린이집은 월 18~24만 원, 사립 유치원은 한 달에 평균 50~60만 원 정도 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오은선 “우리는 다문화 가정이라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 없이 쉽게 들어갔다. 거의 공짜로 다녔다. 그런데 이사 가서 유치원에 가게 되니까 좀 저렴한 곳인데도 한 달에 25만 원이 들더라. 이것도 엄청 싼 편이었다. 문제는 하원 시간이 5시 30분인데, 칼퇴근하고 가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나 대신 학원차가 데리러 가야 한다. 태권도 학원 갔다가 피아노 학원 가고... 학원에 있는 아이를 찾아 집에 간다. 할머니 손을 빌리거나 도와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내가 데리러 갈 수 있는 시간까지 피아노든 태권도든 뭐든 보낼 수밖에 없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사교육비가 들어간다.”

전찬영 “우리는 맞벌이가 아니라서 오후 4시면 어린이집에서 애를 데려 온다. 이런 상황인지 몰랐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도 해서 어린이집 등원 이상의 교육이나 돌봄에 대해서도 자세히 겪어보지 않았는데 걱정이 된다.”

윤정인 “저녁 9시까지 애를 봐주는 곳도 있다. 가보면 방 하나, 두 개에만 불이 켜있고 다 꺼져 있다.애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어쩔 수 없으니 뻔뻔해지자고 다짐하며 그 시기를 버텼다. 세종시는 유치원이 늦게까지 야간반을 운영해서, 7시까지 꿋꿋하게 맡겼다. 그러다 아이가 친구들도 학원 가니까 자기도 보내달라고 해서 태권도 학원에 보냈다.”

 

- 나라에서 보육비를 지원한다고 해도 이런 사정 때문에 사교육비가 계속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한 달에 대략 어느 정도의 사교육비가 드나?

오은선 “우리 아이는 5살인데,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든다.”

윤정인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데, 방과후를 풀로 쓰면 12~13만 원 정도 들고, 예전에는 태권도와 피아노를 해서 방과후 교육비에 학원비까지 한 3~40만원이 들었었다. 지금은 아이가 혼자 집을 볼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중이라, 태권도 피아노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학습지를 하는데 사실 그 비용도 20만원 정도 되서, 결국 3~40만원은 꾸준히 나간다고 봐야 한다. ”

전찬영 “작년부터 아동수당이 많이 늘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나름 시기가 잘 맞아서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느꼈는데, 아직 크게 돈 들어갈 데가 없었던 거였다. 유치원, 초등학교 가도 사교육비가 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 무섭다.”

 

- 정부에서는 늘봄학교 등 학교 돌봄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도움이 될까? 

오은선 “조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돌봄 교실 다니는 걸 보면 학교마다 질 차이가 엄청나다. 잘 되는 학교는 잘 있다가 오는데, 어떤 학교는 황폐하다. 그런 학교는 다 사교육으로 빠진다. 학교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부모들이 원하는 건 학교가 쾌적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간식도 잘 주는 마인드를 가져주기를 원한다. 학교 분위기 차이가 너무 크니까 사립학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윤정인 “실제 초등사립학교를 다녔다. 학교 안에 프로그램이 많아서, 집보다 학교가 더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친구들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스케이트, 수영, 오케스트라, 동아리, 캠프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오은선 “공립학교도 사립학교처럼 할 수 있다. 예산을 안쓰고 불용처리하는 학교도 많다고 들었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이 제도를 실행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공립학교도 좋다고 소문나면 부모들이 주소를 바꿔서라도 들어가려 한다.”

 

- 일하는 부모들이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근본적인 원인 같다.

오은선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성보호 시간이 있어서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다. 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서 퇴근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일반 회사에서는 쉽지 않다. 또 출산 휴가를 3개월 주는데, 쌍둥이를 낳으면 한 달 더 준다. 그런데 배우자 출산 휴가는 5일만 준다. 산후조리원 있는 기간 끝나면 출근해야 한다. 가족돌봄휴가가 유급으로 2일인데, 입학식, 졸업식 때 쓰면 막상 애가 아플 때 쓸 수 없다. 공기업이나 교사, 대기업 다니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한다. 전에 다니던 직장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지만, 다들 쓰고 나면 퇴사 수순이었다. 누가 그만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 대체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오은선 “대체 인력이 출산휴가와 동시에 구해지지 않는다. 또 구해도 일을 배우는 게 늦으니까 남아 있는 동료들이 고생한다. 그래서 출산휴가 간다고 하면 동료들이 싫어하고 돌아오면 이기적인 사람 보듯이 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 공백이 생기는 걸 아니까 출산 휴가 쓰기 눈치보이고, 결국 퇴사하면 경력 단절이 되는 거다. 암흑의 사이클이다. 재취업시에 아이가 어린데, 아이는 누가 돌보는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성불평등 사회에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윤정인 “연구직도 마찬가지다. 연구과제를 수주해서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마음대로 쓰기 어렵다. 애 낳았다고 전체 연구 기간 연장해 주나? 프로젝트 주기에 맞춰 계획적으로 임신해야 한다.”

오은선 “사실 제도는 있지만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장인 아니면 쓰지 못하지 않나? 공무원도 승진 포기해야 쓴다. 올해부터 6+6 육아휴직제도가 생긴다지만 쓰기 어려운 문화적인 문제가 있다.”

 

- 아이 돌봄의 역할은 엄마에게 있다는 인식이 아직 강한 것 같다.

윤정인 “남편이 전 직장 다닐 때, 아이가 아파서 급하게 휴가를 쓰려고 하면 ‘부인은 뭐해?’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어서 휴가 쓰고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수없이 쓰러졌다.(웃음) 애가 아픈데 잘 이해해 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부모님 핑계를 댈 수밖에.”

- 저출생 문제는 하나의 원인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한국사회 모든 문제가 반영된 결과다. 정치권도 저출생 정책에 대해서는 크게 대립하지 않고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저출생 정책이 앞다퉈 나왔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윤정인 “정책은 다 좋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집행되는지 어떻게 감시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지금도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지 고용노동부 신고만 봐도 파악된다. 못 쓰게 하는 곳에는 패널티 주면 되는데 의지는 있는 건가? 정책은 좋은데, 이걸 안 지킨 곳에 패널티를 어떻게 주겠다는 이야기는 안 한다. 기업이 싫다고 하면 실행 안 할 것 같다.”

오은선 “다 필요해 보이고 없으면 안 되는 정책 같다. 그런데 이걸 보고 ‘어 좋은데? 그럼 애를 낳아볼까?’하는 사람이 있을까?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아닌 이상, 나에게 적용된다고 믿을까?”

전찬영 “정부와 정치권이 위기를 느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청년들이 아이 낳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정책이지만, 반대는 설득 못 할 것 같다.”

윤정인 “대출을 받기 위해 아이를 출산하지는 않을 것 같다.”

 

- 아이를 키우기에는 도움이 되는 정책이지만, 이걸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인 것 같다. 아이를 낳게 할 정책은 없는 건가?  

전찬영 “아는 형은 아동수당을 성인될 때 까지 꾸준히 주면 애를 낳겠다고 하더라.”

윤정인 “그럼 학원비가 오를거다.”

 

-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전반적인 육아 인프라 문제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오은선 “병원문제가 심각하다. 동네 소아과도 계속 없어지고 있다. 병원예약 어플로 예약해도 대기가 많아서 진료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있는 일부 병원에 몰리니까. 대기를 올려놓았는데 병원에서 당일 환자가 많다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적도 있다. 매번 응급실 갈수도 없고.”

전찬영 “우리 동네도 소아과가 하나 있었는데 문 닫아 버렸다. 아이가 돌 되기 전에 밤중에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고 난리가 나서 급하게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소아과 진료 가능한 응급의가 없다고 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윤정인 “애가 화상을 입었을 때 병원에 달려 갔는데 두 곳에서 거부했다. 소아 화상을 보는 의사가 없었다. 이게 현실이다. 그나마 세종시는 충남대에 소아 병상이 따로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 아이가 줄어드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육아 인프라가 약해지면 더 출산율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전찬영 “친구들끼리 지방은 둥지는 있는데 일할 곳이 없고, 수도권은 일은 있는데 둥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집값 비싼 수도권이나 신도시에는 아이들이 몰려서 인프라가 감당이 안되어 문제고, 조금만 지방으로 가면 집값은 낮아도 아이들이 없어서 또 문제다. 신혼부부가 될 청년들이 경제활동도 해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같다.”

 

-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저출생 문제는 육아나 돌봄 문제를 넘어서는 의제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해법도 육아, 돌봄의 경계를 넘어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오은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약자가 되어도 괜찮다고 느껴야 한다. 경제, 불평등, 안전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저출생만 따로 떼어서 치료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

전찬영 “대화를 나누다 보니 걱정이 많이 생겼다. 원래 셋은 낳을 생각이었는데 둘째까지만 할까?(웃음) 청년들이 자기 엄마,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보고 자랐다. 주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듣고. 돌봄 문제, 집 문제... 아이를 낳아도 되겠다는 이유들이 늘어야 하는데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만 계속 늘어난다. 육아 정책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윤정인 “우리 저출생 정책은 아이를 낳는 것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 있다. 결혼하면 얼마 주고, 애 낳으면 얼마 주고. 영·유아 때는 이런 지원이 나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부모들이 시간을 확보하기가 너무 어렵다. 물론 10년 전과 비교하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힘들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고, 또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근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부모의 근로 시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이 시간까지 대신 애 봐줄테니까 넌 계속 일해. 돈 얼마 줄게’ 이런 식? 가족을 가족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가 인터뷰 : 박은정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박은정(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저출생 문제는 최근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오래됐다. 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생 국가로 규정하는데,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초저출생 국가로 들어섰고, 2018년에는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OECD국가 중에서도 10년 넘게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2072년이 되면 인구수가 1977년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세계에서도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를 가장 급격하고 심각한 사례로 보고 있어서 관심이 높다.”

 

-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지원이 집중되니까 불만이 있는 청년들도 많고 심지어 혐오하기도 한다던데, 다른 나라도 이런 현상이 있나?

박은정 “외국은 이런 현상이 덜하다. 결혼 안 한 청년들이 아이 있는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이 심해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늘 불안감이 있으니까 자신과 다른 집단을 쉽게 혐오하게 만든다. 스웨덴 등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성의 경제활동이나 성평등이 단지 여성의 커리어만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있어서 양성 평등적인 육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했고,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할까? 문화적 차이도 큰 것 같다.

박은정 “우리나라는 생애주기라는 것이 고정관념처럼 있다. 몇 살 되면 뭘 해야 하고, 또 몇 살 되면 뭘 해야 하는. 여기에서 다른 사람보다 몇 년만 늦어져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유럽에서도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이전보다 낮은 직급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좀 들어도 커리어를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 비해 훨씬 덜하다. 우리는 뒤처지는 두려움이 너무 큰 사회다.”

 

- 정부와 정치권에서 여러 육아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지역별 편차가 크다.

박은정 “보육문제의 지역 격차는 정부에서 계속 연구하고 있는 문제다. 신도시가 많이 만들어지는데, 보육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 부부들이 몰려서 어린이집에 수용하지 못한다. 전국적으로는 영유아수 감소로 폐원하는 어린이집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가정 어린이집은 1만개소 이상 폐원했다. 어디는 넘치고 어디는 문닫고... 어려운 숙제다.”

 

- 아이를 낳도록 유도한다고 하면서 실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가 너무 많다.

박은정 “그런 문제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올해는 초등학교 1학년이 조건 없이 모두 이용할 수 있고 내년에는 1, 2학년, 그 이후는 모든 학년이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이게 실제로 어떻게 돌아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린이집의 경우는 4시까지는 기본 보육을, 7시까지 연장보육을 쓸 수 있는데 아동 대부분 이 4시 이전에 하원을 하기 때문에 사실 눈치 보여서 못 쓰는 경우가 많다.  

 

- 중요하게 나오는 이야기가 비용 문제다. 나라에서 보육 비용을 지원해 주지만, 실제로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사교육 시장에 발을 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비용이 지원받는 금액을 상회한다. 외국도 그런가?

박은정 “미국과 유럽이 좀 다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학업 관련 사교육이 매우 드물다. 아이가 흥미가 있는 분야에 대한 사교육 정도이며, 우리나라처럼 어릴 때부터 성적을 위한 사교육은 드물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가 소득수준에 따라 보육비용을 차등 적용하나, 우리나라는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보육비 부담이 훨씬 적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별활동 등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하여 부모의 부담이 여전히 크다.”

 

-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이 아니면 육아휴직도 쓰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특히 육아 문제에서 여성의 희생을 지나치게 요구한다는 의견도 거세다.

박은정 “육아휴직 사용자를 기업규모별로 살펴보면 300인 이상 규모의 기업이 남녀 모두 높다. 남성 육아휴직률도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2021년생 기준으로 아버지 100명 중에 4.1명이 사용하였고, 2022년생 기준으로는 100명 중 6.8명이 사용하였다. 물론 남성의 인식이 많이 바뀌기는 했다. 남성의 연령이 어릴수록 돌봄은 남성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다. 그런데 사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일부 중소기업 CEO들은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직 우리의 사회문화나 조직문화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육아정책 전문가로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나?

박은정 “몇 가지 고민이 있다. 우선 육아휴직 사후지급은 폐지하는 게 어떨까? 25%는 나중에 주는데, 150만 원 중 사후지급 떼고 받으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게 고용유지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데 효과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 있다. 액수도 올리고 사후지급을 폐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금성 지원은 시장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도 봐야 한다. 첫만남 이용권(산후조리원 지원금) 나오고 산후조리원 비용이 올랐다. 시장은 영민해서 이게 자신들에게 새로운 돈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반응한다. 부모급여도 돌봄 전체 비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지켜봐야 한다. 선심성 정책으로는 누더기 정책이 될 우려가 있다. 아동수당을 기본으로 해서 다양한 방식의 확대를 통해 제도 자체를 고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너무 새로운 정책 브랜드 붙이기로만 가지 않았으면 한다. 해외에서는 아동수당을 17~18세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보편 수당도 소득수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동수당도 저소득층에게 추가 지원하는 등의 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데, 이런 정책은 인기가 없다는 게 문제다.

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도시 인구집중도가 해결되었을 때 출산율 증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세계적으로도 인구가 집중된 도시는 출산율이 낮다. 서울은 더 특수하다. 한 도시에 이렇게 집중된 나라가 없다. 서울의 집중도가 출산율에 미친 영향이 크다. 젊은 사람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저출산은 경제문제와 엮여 있어서 육아 인프라만으로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 육아 인프라도 열악하다.”

 

- 저출생 문제는 단지 육아나 보육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것 같다. 그만큼 근본적이고 어려운 문제이자, 여러 문제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박은정 “크게 두 가지 측면을 말하고 싶다. 첫째, 저출생은 사회가 만들어 낸 불안의 결과다. 저출생 문제는 사회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청년의 불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불안 속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올까?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 문화다. 공부하고 취업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안정감이 없는 것이다. 둘째, 실질적으로 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도는 제도 설계 수준에서 보면 매우 높은 수준이긴 하다. 문제는 이게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는 새로운 제도를 쏟아내기 보다는 잘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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