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대화] 기후 위기, 교통 시스템의 대안은?(대화 전문)

손우정
발행일 2023-08-22 조회수 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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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일시

- 2023.8.15.(화)

■ 참여자

- 전현우(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저자)

- 박근태(자동차산업과 노동연구자, ‘전기자동차가 다시 왔다’ 저자)

■ 진행

- 조건준(아유)

- 손우정(대담한 대화)

 

- 휴일에 의미 있는 대화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교통시스템, 이동 수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해요. 전현우 선생님은 ‘철도 덕후’라 불릴 정도로 철도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해오셨고, 박근태 선생님은 대기업 자동차연구소에 있으면서 기후위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각자의 전공과 시각에 따라 기후위기를 보는 관점이 다를 것 같아요.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선생님들은 주로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전현우 “출퇴근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출장이나 답사를 갈 때도 철도를 타요. 자동차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운전면허도 안 땄어요.”(웃음)

 

박근태 “저도 주로 지하철을 탑니다. 자동차는 한 달에 한두 번 탈까? 가족들과 같이 이동해야 할 때. 택시도 거의 안 타고 도보나 지하철을 탈 때가 많죠.”

 

- 전현우 선생님은 철도를 사랑하시니까 그렇다 쳐도, 박근태 선생님은 자동차 회사에 다니시는데, 회사에서 싫어할 것 같은데요?

 

박근태 “회사 입장에서는 차가 많이 팔리면 됐지, 사람들이 자동차를 많이 탈 필요는 없어요. 회사도 저에게 자동차를 개발하는 걸 원하지, 많이 사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니까.(웃음) 물론 우리 회사 사람들은 차를 많이 가지고 다녀요. 거부감도 없고.”

 

- 기후위기와 교통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기후위기를 불러오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텐데, 왜 특별히 교통이 문제라고 보시나요?

 

전현우 “인류가 기후가 문제라고 인식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주로 화석연료 연소에서 비롯되죠. 화석연료 사용 분야를 크게 발전소나 정유시설 같은 에너지 변환, 공장 같은 산업, 건물, 그리고 교통으로 나눠요. 이 30년 가운데 초기 15년 정도까지는 모든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폭증하지만, 그 이후 15년은 다릅니다. 선진국에서는 그래도 배출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분야들이 나오지만 교통 부문 배출량은 그대로예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교통분야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제일 높아요. 중국, 인도 모두 그래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을 따라간다고 가정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속도가 느려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이 없지는 않아요. 그런데 교통은 절대량도 작지 않은데다 변화의 방향마저 다릅니다. 이대로면 교통이 배출량의 핵이 될 겁니다. 유럽은 이미 교통 배출량이 제일 많아요.

왜 이렇게 망했나? 저가 항공의 범람도 있고, 자동차 분야의 변화도 큽니다. 차종만 해도 세단이 주류였다가 이제 SUV가 대세죠. kg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이 발전해도 차량 부피가 커지고 무게도 늘어나니까 km당 배출량은 계속 유지됩니다. 실제로 한국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출퇴근길 고속도로에서, 휴가철에는 항공기와 자동차가 쌍끌이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어요.”

박근태 “이동 수단은 사람이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고, 교통 시스템은 이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규칙, 규범, 조직을 다 포함한다고 보면, 시스템이 수단에도 영향을 미쳐요. 미국의 경우를 봐요. 초기에는 내연기관차가 지배적이지 않았는데, 장거리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주행 능력과 속도가 중요해졌고, 그래서 내연기관차가 더 유리해진 거죠. 주로 근거리 이동이만 했던 시절에는 전기차가 더 편했어요.

그런데 점차 주행 거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활도 광역화되고 있죠. 예전에는 식료품 사려고 한 시간이나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죠. 그러다 보니 짐을 많이 실어야 하니까 SUV를 선호하게 되고. 예전에는 세단이 고급차였고 SUV는 고급차로 인정 안 해줬는데, 지금은 안 그렇죠? 단순히 사람들의 기호가 바뀐 게 아니라 편리하니까 SUV를 타는 거예요. 지금의 방향은 기후위기에 역행하고 있어요.”

 

-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면서 기후위기에 역행한다는 인식을 못하는 것 같아요.

 

박근태 “큰 차 타면 환경오염이, 온실가스 배출이 심하니까 경차 타라고 하는 방식으로는 큰 소용이 없어요. 온실가스 때문에 해외여행 가지 말라고 하면 실효성이 있겠어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두 가지를 고민해 봐야 해요. 첫째는 지금 역행하고 있는 교통수단 말고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것, 둘째는 그 대안을 선택하도록 만들 가치를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에요. 해외여행을 가면, 비행기보다 배를 탈 수도 있다는 선택지와,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가치를 줘야 해요. 그런데 가치판단을 강제하는 건 쉽지 않죠. 사회적 가치가 바뀌게 하거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선택을 할 시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전현우 “2020년대로 오면서 자동차가 완전히 자연스러운, 자동차 지배 사회가 완성된 거 같습니다. 경제성장기, 아니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는 말을 많이 썼어요. 국제 유가가 폭등하거나 무역적자가 발생하면 차량 2부제를 권고하면서 이런 말 많이 썼죠. 돌아보면, 재작년부터 역대 최악의 무역적자와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이라는 상황이 겹쳤어요. 그런데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유류세를 낮춰 줬어요. 이건 자동차를 계속 타라는 신호죠. 정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자동차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주 강해진 거 같아요.”

 

-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 보죠. 전현우 선생님은 철도를 수단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어요. 어떤 구상인가요?

 

전현우 “기후 위기라고는 하지만, 지난 200년 동안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전부 다 말아먹었던 건 아니죠. 남겨야 할 그동안의 성취가 있습니다. 저는 그게 대도시와 그 속의 삶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걸 잘 뜯어보면, 걷기는 남아 있어요. 걷기를 기반으로 교통 체계를 쌓아 올려 대도시, 나아가 광역 도시권 전체를 연결해야 합니다. 이때 도시의 세포는 이른바 15분 도시(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15분 이내의 범위에 최소한의 삶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요소들을 구성하는 개념-기자말)를 활용하면 됩니다. 보통 초등학교가 이 동네의 기준점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스스로 걸어와서 학교에 올 수 있도록 동네를 짜는 거죠.

그런데 이런 동네만으로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없어요. 영화관, 대학교, 아니면 큰 회사 등등은 동네 여러 개의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한 중심지 기능이죠. 이 기능을 유지하려면 동력 이동 수단이 필요하고, 그중에서도 대중교통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대중교통은 정류장까지 걸어서 이동합니다. 걷는 사람들이 자신의 걷기 공간을 도시의 곳곳으로 넓힐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 대중교통이라는 거죠. 걷기와 대중교통이 서로 결합한 ‘확장된 걷기 공간’이 대도시의 미래이고, 그 뼈대가 철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위기도 완화하면서, 대도시를 위한 여러 조건도 지키는 길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 도시 기능을 유지하려면 생활만이 아니라 산업구조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현우 “이런 대안은 전 세계 모든 대도시가 고민해야 하지만, 한국 대도시의 경우에는 제조업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해요. 제조업은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21세기 들어서 난개발로 모두 흩어져 버립니다. 서울을 벗어나면 수도권 일대에 공장들이 난개발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잖아요? 아파트는 지구단위계획이라도 해서 들어가지, 공장 지대는 주차도 하기 힘든데 꾸역꾸역 개발 중입니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공장들을 도심과 연결하고, 그래서 시대 변화에 맞는 산업이 도심과 외곽에서 모두 작동하도록 만드는 게 지금 제일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철도망이 답이 될 수 있어요. 도심지의 고차 서비스는 제조업같은 다른 생산자와 연결될 때 부가가치가 커집니다. 한편 제조업도 통근은 물론 고차 서비스 거점에서 오는 출장객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이동을 철도망으로 가능한 한 흡수해야 합니다. 철도망은 대도시 도심과 외곽을 잇는 방사형 구조를 기본으로 하니까 난개발을 넘어 공간 분업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뼈대를 만들 수 있어요. 그래야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한국 경제도 최소한의 희생으로 지속가능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박근태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해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철도로 확장할 수 있는 곳까지는 철도를 깔면 되는데, 안 되는 곳은 자동차밖에 대안이 없어요. 교통연구원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2050년에도 철도 분담률이 50%가 안 됩니다. 철도로 확장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철도 중심의 재편만이 대안이라는 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교통수단, 특히 자동차에 대한 대책도 고민해야 해요.”

 

전현우 “철도가 무조건 답이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계산해보니까 철도 한 량에 3명 미만의 승객이 탑승하면 에너지 효율이 없어요. 탄소배출량은 (한 량에) 6명 미만이면 철도가 더 많고. 그 이하의 승객이 탄다면 버스나 다른 수단을 공급하는 게 맞겠죠. 건설비, 운영비 문제도 있어서 철도도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버스전용차로가 건설비당 용량 측면에서는 제일 효과적이지만, 시간당 1만 명 이상 통과할 수 있는 건 철도만 가능해요. 국내에서는 수도권 대부분 노선이나 부산 주요 노선, 경부고속철도나 경부선 본선이 여기에 해당하죠. 물론 일본에서 지방 선로를 폐지할 때 썼던 기준을 고려하면, Km 당 하루 2천 명 이하가 이동한다면 버스가 낫죠. 그 이상이면 여러모로 철도가 낫다는 거고.

현재 국내 도로 연장은 대략 10만km인데, 철도는 철도공사가 4천km, 도시철도(이른바 ‘지하철’)랑 민자 기타 철도 약 1천km, 총 5천km밖에 안됩니다. 정부 계획대로 다 되면 6~7천km 사이, 욕심껏 더 지어도 8천km 정도? 1/15~20길이 밖에 안 되는 망으로 비슷한 수송량을 감당하려면 축을 잘 고르고, 공간 계획을 세심하게 짜야 하죠.”

박근태 “철도가 효율적인 곳은 철도를 깐다고 해도, 나머지는 버스나 자동차가 담당할 수밖에 없어요. 결국은 자동차인데, 자동차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기후위기에 대한) 완전한 대안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자동차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술을 발전시키면 된다는 논리엔 절대 현혹되면 안 돼요. 기술 발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그만큼 더 기능이 많아지고 비싸지니까. 기술 발전을 상쇄시키는 다른 요인들이 있어요. 기술적인 해결책은 단지 사회적 해결을 좀 더 수월하게 해주고, 덜 해롭게 만드는 것일 뿐이지 근본적 해결은 아니에요.”

 

- 전기자동차 역시 배터리 제작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충전하는 전력의 원천이 석탄과 가스라면 탄소배출량이 크다는 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기술이 발전해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시는 건가요?

박근태 “전기차도 처음에는 장거리용이 아니라 시내에서만 타는 시티카였어요. 그런데 장거리를 가야 하니까 배터리를 크게 달고 항속거리를 늘리기 시작한 거죠. 처음에 테슬라가 고급 전기차인 모델 S를 만들었을 때 배터리 용량이 60kWh 정도였는데, 지금은 중소형 전기차도 그 정도 달아요. 큰 차가 100kWh 정도 달기도 하고. 배터리를 크게 만들고 많이 달면 환경에 해로워요. 전기차를 흔히 친환경차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전기차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 연료비 절감이예요. 친환경은 멋진 명분이고.

전기차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다만 덜 해롭게는 할 수 있고,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충전 인프라 충분히 깔고 용량이 작은 배터리를 달면 돼요. 이런 제품이 팔리려면 소비자의 선택과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100kWh 배터리 달던 차에 배터리 용량을 반으로 줄인 배터리로 교체한다고 해서 전기차가 환경에 해롭지 않은 건 아닙니다. 자동차는 안 타는 게 제일 (환경에) 좋지만, 어쩔 수 없이 타야 한다면 가능한 덜 해롭게 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 ‘전기차는 죄가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박근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도 자동차는 환경오염을 시킵니다. 주행하면서 미세먼지도 일으켜요. 타이어 마모나 브레이크 마찰에서도 미세먼지를 일으키잖아요? 생산 과정에서도 오염물질이 나와요.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전기차가 진짜 친환경차인 것처럼 생각하게 해서 전기차를 타면 ‘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야’하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이에요. 마치 환경 생각해서 텀블러 쓴다면서 집에 엄청나게 텀블러를 쌓아 놓는 것과 비슷하죠.”

 

전현우 “환경 부담은 공간 소비에 비례해요. 도로부지만 해도 2022년 연말 기준 3,453㎢예요. 서울(605㎢)의 6배, 제주도(1850㎢)의 2배 넓이죠. 하천부지(2871㎢)보다 넓어요. 게다가 재생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재생에너지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면 에너지 문제가 공간 문제로 바뀝니다.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유지한다는 조건에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발전소가 얼마나 더 필요할까요? 전기차와 태양광 발전소의 표준스펙으로 계산해보니까, 필요한 전력량은 126TWh, 이걸 충당하려면 1442㎢, 즉 서울의 3배, 제주도 수준의 면적이 필요해요.

추가 면적이 그 정도예요. 2018년 현재 한전이 발전한 전력량은 총 593TWh였죠. 이걸 태양광 발전소로 충당한다 치면 6788㎢ 필요합니다. 서울의 11배 면적 만큼 태양광 발전소를 넓게 설치해야 겨우 지금의 전기만 충당할 수 있어요. 전기차만이 아니라 다른 에너지 분야도 소비량을 크게 줄여야 해요. 교통 부문에서 그렇게 하려면 철도를 축으로 하는 확장된 걷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주장이고요.”(발전량 계산 자료)

 

- 박근태 선생님은 전기자동차도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철도 중심의 교통체제 개편에도 비판적인 이유는 뭡니까?

 

박근태 “전현우 선생님 주장처럼, 정책적으로 철도를 확산하는 게 정말 좋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어요. 이동 수단과 인프라를 늘리면, 거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철도망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이동을 유도하죠. 철도망도 깔 수 있는 곳에 다 깔라고 할 건가요? 또, 환경 효율을 생각하면 철도로 승객을 대량으로 수송하면 좋은데, 지금은 옛날처럼 승객을 빡빡하게 밀어 넣을 수는 없어요. 이동할 때의 개인적 만족이라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예전에 우리 선배들은 절대 집보다 차를 먼저 사지 말라고 했어요. 돈 못 모은다고. 그런데 지금은 집보다 차를 먼저 사는 시대입니다. 또 우리 젊었을 때는 작은 차부터 사서 점차 큰 차로 바꿨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큰 차를 사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세대의 경제적 합리성과 지금 세대의 합리성이 다른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교통 시스템의 대안을 짜려면 적어도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해요. 하나는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비용이 싸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동 경험이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충족하지 못하면 철도는 경쟁력이 없고 서민의 교통수단에 머물게 될 뿐이에요.”

 

전현우 “왜, 무엇이 만족인지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19 거치면서 비만율이 올랐습니다. 움직임이 줄어서라는 진단이 많죠. 그런데 자동차 이동은 오히려 늘었어요. 차량 주행거리가 늘어 났으니까요. 반면 대중교통 통행은 회복이 안 되고 있어요. 어디 등록해서 억지로 가야 하는 운동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운동이 사실 제일 중요하거든요. 의학에서는 아예 활동적 교통, 활동적 생활환경이라는 말로 대중교통을 조명합니다. 대중교통은 걷는 걸 유도하고, 신체 활동을 늘려서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유리하다는 거죠.”

 

박근태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동의 만족을 교통수단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사적공간이 필요한 영역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연인이 데이트를 하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중교통의 질을 높여줘야 해요. (대중교통에) 개인 공간을 늘려 주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KTX도 너무 좁아요. 지하철에서도 요즘에는 짐을 올려 둘 수 있는 선반을 없애고 있어요. 선반 없애면서 가방을 갖고 다니는 게 불편해지고, 피로도가 확 높아졌어요. 안전 문제도 있죠. 사실 코로나 전염 우려 때문에 자동차 이용율이 꽤 높아졌어요. 게다가 ‘묻지마 칼부림’처럼 물리적 폭력에 대한 공포도 있고.

걷는 것과 대중교통을 연결시키는데, 걷기도 마을버스가 다니는 정도가 한계예요. 이 범위를 넘어가면 고민하기 시작해요. 저는 걷기를 좋아해서 꽤 많이 걸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인데, 퇴근해서 피곤하면 2km 이상 걷는 건 선택을 하지 않아요. 게다가 에스컬레이터도 없으면 대중교통을 활용해 걷는다는 선택을 잘 안 할 것 같아요.

흔히 대중교통으로 유도한다고 자동차에 패널티를 주는 걸 자주 이야기하는데, 이런 방식도 곤란해요. 자동차를 이용하는 분 중에는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더 비싼 하이브리드차, 전기차를 사면 비용을 보조해 줍니다. 패널티를 주는 방식은 오히려 부자들이 혜택보는 방식일 수 있어요. 좋은 방법은 아닌 거죠. 대중교통의 공공성과 편의성을 높여주고 더 쾌적하게 만드는 투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해요.”

 

전현우 “저는 패널티를 주는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박근태 선생님이 언급하신 교통연구원 보고서 계산은 탄소 중립을 위해 자동차 주행거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이 초점이예요. 이걸 현실화 하려면 대중교통이 괜찮은 수도권은 차량 주행거리가 4분의 1 정도로 줄어야 할 겁니다. 서울은 그보다 더 해야 하고. 게다가 대중교통 투자, 유지보수비는 모두 안정적인 세원 없이는 불가능하죠. 안정적인 세원은 사람들이 계속 돈을 쓰길 원하는 곳에서 찾는 게 맞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자동차는 개인적인 만족을 주니까 안정적인 세원으로 적절하죠.

지금도 유류세로 철도를 짓는데, 지금처럼 리터당 일정액의 유류세에 의존하는 건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이 많은 비수도권에서 세금을 거둬서 철도가 밀집한 수도권에 퍼주는 구조에요. 이런 방식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수도권에서 상당한 패널티는 불가피해요. 도로 용량을 좀 줄이고, 유지되는 차량 통행량에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서 수도권 대중교통은 물론 비수도권 대중교통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차주한테는 주행세, 혼잡통행료를, 차량을 끌고 오게 만든 사업자에게는 교통유발분담금을 물려야 합니다.

물론 자동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지역도 있습니다. 비수도권 도농복합시, 군 지역은 전기차 전환을 통해 탄소 배출 잡는게 필수적이지요. 이런 지역은 거점 중심으로 인구를 유도하는 한편, 지역 교통망 유지보수비 이상의 부담은 지지 않도록 자동차 관련 세율을 유지한다면 지역균형발전과 원인자 부담의 원칙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금 있는 도로망을 없애자는 건 아니고, 버스 공간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요새 지옥철로 김포 골드라인이 유명하잖아요? 바로 옆에 있는 올림픽대로와 연결된 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해서 지옥철 사태도 완화하고, 간선도로의 용량도 줄여 전체 차량 주행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 전현우 선생님은 책에서 자동차를 ‘공간의 납치범’이라고 불렀잖아요? 기후위기 시대에 교통 시스템을 철도 중심으로 재편하자고 주장하시는데, 사람들에게는 아직 전기차 프레임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충격요법이 필요한가요?

전현우 “‘공간의 납치범’이라는 표현은 누가 납치되고 누가 해방되느냐가 초점이죠. 여기서 납치되는 건 ‘걷는 사람’이에요. 걷는다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이동 모드고 어떤 변화가 와도 지켜야 할 이동방식이죠. 그럼 걷기를 어떻게 촉진할 거냐? 대중교통은 정류장과 집을 오가며 수백 미터는 걷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도시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현상이 일어나죠. 요새 잘 나가는 동네는 결국 걷기 공간이 풍성한 곳들이에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공간이, 기후 대응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데 자동차는 걷기를 축소하고 문과 문의 간격을 좁히는 것에 주목하죠. 그 과정에서 걷기 공간에 들어오면 걷는 사람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을 먹어치우고요. 빵! 하는 경적까지 보행자에게 울리면 보행자는 옆으로 비켜서야 합니다. 대로로 다니는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해 피맛골로 피하는 전근대 민중의 기분이 비슷할 거 같습니다. 이렇게 걷는 사람을 무시한 채, 도시를 자기에 맞춰 재구성하는 자동차의 면모를 포착해서 납치라고 쓴 거죠.”

 

박근태 “제 생각은 좀 다른데, 원래 환경파괴의 원조는 기차였어요. KTX 만들 때도 논란이 많았고. 지금은 자동차가 문제가 많으니까 대안으로 기차가 주목받게 된 거죠. 기차가 식민지 수탈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문제는 기차나 자동차가 아니라 인간이에요. 인간의 욕망이 기계화된 교통수단을 활용한 거죠. 우리가 특정한 교통수단만을 문제 삼는 건 해결책을 제약할 수 있어요.

해결책이라는 건 첫 번째로는 충격요법을 쓰는 방법이 있고, 다음으로는 알게 모르게 스며들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둘 다 필요하지만, 지금은 스며드는 방식에 주목해야 해요. 항상 지배자의 권력은 세죠. 도전자가 상당한 파워가 있어야 붙어볼만 한데, 그냥 붙으면 백전백패에요. 자동차의 비중을 줄이고 서서히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해요.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경오염에 취득세를 붙이는 식으로 세제를 개편하는 게 중요해요. 주행세도 도입해서 ‘네가 환경오염을 유발한 만큼 부담하라’고 하고.

물론 이렇게 하면 처음에는 전기차 판매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서서히 자동차 주행을 줄이는 효과를 만들 수 있어요. 이미 선진국에서는 운전면허를 따는 젊은 세대도 줄고 있고 가치관이 바뀌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동차 회사들은 단순히 차를 많이 팔기보다 고부가가치로 고급 브랜드 만들고 SUV 비중 높여서 영업 이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취득세, 주행세 도입은) 전기차 이용을 촉진한다는 명분도 있죠. 자동차는 납치범이고 악마라고 낙인찍기보다 그로 인한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봐요.”

 

전현우 “기계화된 수단을 활용하는 인간만 강조하는 건 기계를 얕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바꿨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인간이 기계를 욕망하는 것도 기계가 인간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실재이기 때문일거고요.

철도를 주목하는 건 역사적 굴곡이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한 번 망해봤거든요. 한국철도는 대략 50년 동안 적자가 나고 있습니다. 자동차, 항공 모두 이렇게 총체적으로 망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민간기업이면 사라졌을 사업인데 계속되고 있죠. 해법을 찾기 위해서 온갖 사회적 가치를 찾고, 주변 교통수단과 결합하고, 나아가 도시 구조와 제도까지 손을 대고 있죠. 이런 과정에서 교통을 둘러싼 많은 것들을 반성할 렌즈가 되어줬다고 생각합니다.

납치라는 말은 자동차를 악마화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하게도 자동차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니까, 누구를 따로 분리할 수도 없습니다. 자동차 지배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말이고, 그 수준이 너무 심해서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도시의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묘사하는 말이지요. 자동차 지배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납치범이자 인질이 되었다고 할까요.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면, 결국 협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납치라는 규정은 협상을 위한 패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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