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악숙환을 끝내려면? (대화 전문)

김연수
발행일 2023-10-21 조회수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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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일시

2023.10.17.(화) 오전 9시 30분

 

■ 참여자

이선우(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 진행·기록 및 정리·영상

김연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임동준(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정옥다예(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해당 '대담한 대화' 대담는 빠띠 캠페인즈팀의 미디어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10월 7일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 정부 하마스가 이스라엘 유대 명절 초막절이 끝난 안식일 새벽에 하마스 주장으로는 로켓 5천여 발을 발사했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장벽을 폭파하고 이제 불도저를 동원해서 이제 돌파를 하고 이제 오토바이나 트럭 그리고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에 침투했다라고 알려져 있다. 소위 알 아크사의 홍수 작전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에 대한 절멸의 관점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상황을 좀 봤으면 좋겠다라는 문제의식에 따라 오늘 대담을 준비했다. 본격적인 대담에 앞서서 오늘 모신 분들의 좀 소개를 부탁드린다.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현재 박사 수료 상태에서 공부하고 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고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도 하면서 왔기도 했고 또 오히려 전문가분들이 오신다고 하셔서 들으러 왔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 학교에서 평화 관련된 강의나 이런 것도 진행하고 있어서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 함께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사단법인 아디는 팔레스타인과 같은 아시아 분쟁 지역에서 인권 옹호 활동, 기록 활동 그리고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는, 약 7년 차 신생 중견 단체다. 이번 팔레스타인 사건으로 얘기를 해야 될지, 하마스 가자 전쟁으로 봐야 될지 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최근에도 팔레스타인의 어떤 연이 있어서 하필이면 또 갔었을 때 시작을 현지에서 맞기도 했다. 그동안 들었던 얘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선우(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원래 전공은 중국 철학사다. 지금은 역사 속에서 잊혀져 있는 존재들, 민족이라든가 종교, 소수자 혹은 범죄 혹은 범죄로 치부되었던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용 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상임이사, 이선우 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 정옥다예

 

-많은 분들이 예전의 역사적 사건보다는 현재 최근 며칠간, 10여 일간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 작전에 대해서 혹시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선우(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이번에 이렇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진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다 무시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사실 좀 많이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었을 때 불과 전날인가 일주일 전에 미국이 우크라이나한테 러시아가 침범할지도 모른다라는 경고를 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젤렌스키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젤렌스키가 이 경고를 무시하고 ‘설마 러시아가 들어오겠냐’라고 하다가 결국에 이 꼴이 났다”라고 주장한다. 

이번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서, 물론 하마스가 굉장히 비밀리에 준비한 것도 맞겠지만 모사드는 물론이고, 모사드 외 이스라엘 정보 조직들뿐만 아니라 미국도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너무 좀 방관하지 않았나, 무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5~6년 전부터 조금 느끼고 있는 거는 흔히 우리가 정치학 쪽에서 1945년 이후로 ‘긴 평화’라는 말을 쓴다, 이것도 좀 기만적인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끝날 수도 있겠다’, ‘이제 진짜 1945년 이전으로 전 세계가 다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지금 이 사태가 ‘세계 대전으로 벌어질까?’라는 데에서는 조금 의구심이 들지만 최근에 이런 여러 가지 동아시아부터 중동 유럽 이런 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하마스가 먼저 공격했으니까 하마스가 나쁘다’ 이거 말고는 사실 국내 언론이 하는 얘기가 없는 것 같다. 물론 그 방식이 ‘과격하다’, ‘잔인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좀 긴 맥락을 좀 볼 필요가 있고, 맥락 속에서 보면 약자의 투쟁이다. 버니 샌더스 같은 사람들도 그런 소리를 트위터에 했다. 그래서 ‘참 속편하게 말한다’, ‘온실 속의 화초, 도련님, 아가씨들이 할 소리 아닌가’ 그런 생각도 솔직히 좀 많이 들었다. 유대인 문제를 보다 보면 느끼는 게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유례 없이 체계적인 대량 학살이긴 했지만 솔직히 좀 백인 중심주의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과거에 독일이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수만 명을 학살했다. 그런데도 1990년대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2천년대 들어와서 처음으로 사과했지만 지금도 ‘돈 줄 테니까 된 거 아니냐’라는 식이다. 이스라엘 총리가 홀로코스트 무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사진 그것만 보면서 ‘참 이스라엘 훌륭하다’, ‘일본은 왜 그러냐’ 하는데 우리가 너무 좀 백인 중심주의적인 시각을 좀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저도 선우님 하신 얘기에 동의한다. 이 작전은 누군가는 테러라고도 이야기할 테고 누군가는 공격이라고 얘기할 텐데 이것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을 때의 함정이라는 게 너무 명확한 것 같다. 사실 모두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얼마나 잔인했나’, ‘누가 잘못했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모르겠다. 왜냐면 맥락을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드러난 것만으로 본다면은 잘못했다라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면 2천년대 한 초중반까지는 팔레스타인의 담론이나 논의나 이런 것들이 좀 계속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한국 사회에 되게 훅 사라졌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들과 ‘10년 이상 나도 업데이트가 안 됐다는 걸 좀 요즘 깨닫는다’, ‘다시 한 번 봐야 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 제 친구가 있다. 같이 공부했던 활동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생각도 먼저 났다.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더라. 그런 의미에서 남의 일일 수만은 없었다. 

이스라엘 외교부 장관 쯤 되는 분이 ‘한국에겐 이스라엘이 미국 다음으로 가장 친한 우방이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왜냐면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개념으로 이스라엘을 많이 방문한다. 굉장히 많은 교류가 있다고 하더라. 물론 따져보면 유대교와 기독교로 다른 종교인데 이게 맞냐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기독교 교회의 교류가 굉장히 많은 곳이라고 한다. 근데 반면에 ‘우리에게 이스라엘 친구는 많은데 팔레스타인 친구는 있을까?’ 질문을 좀 해보고 싶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올 게 왔다’고 느꼈다. 하마스가 어떤 종류의 잘못을 해서 그것대로 비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이스라엘에 있다는 게 명백하다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는 1945년 이후에 이른바 이상주의적이고 자율적인 국제질서의 가장 큰 어떤 허점이고 가장 부도덕한 위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터질 게 다시 한 번 터졌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렇게 공격하면 그다음에 뒷감당 어떻게 하나’, ‘사람들이 얼마나 죽게 될까’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앞선 얘기를 듣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초점을 갖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지금의 논의 양상들을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태’고 ‘하마스 전쟁’이라 불린다. 이스라엘은 왠지 원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 있다. 물론 10월 7일 하마스 육해공 작전은 나중에 기관이나 유엔 차원의 조사를 하더라도 전쟁 범죄 혐의를 벗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 상황을 참작하면 하마스가 전쟁 범죄를 한 게 맞다. 그런데 왜 이것만 얘기가 될까.

2021년에도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점령하고 있다는 가자를 공격했다. 제 기억 속으로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그 외에도 셀 수가 없이 많은 폭격과 학살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것들은 한 선상에서 논의 되지 않는 걸까?

저는 10월 7일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 있었다. 아침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깃발을 흔들고, 아이들이 환호했다. 그때 뉴스를 못 봐서 무슨 일인지 몰랐다. 사무실에 가서 알아보니 ‘우리가 드디어 이스라엘을 넘었다’라는 얘기를 했다. ‘하마스가 누군가를 죽였다’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닌 거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를 점령하고, 2007년에 가자가 완전히 막히면서 가자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그 장벽을 넘어본 적이 없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젊은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이스라엘 점령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근데 그걸 눈으로 본 거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고, 세상이 변해버린 거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보는 시각들은 그 이후에 있었던 ‘하마스의 만행’뿐이다. 

근데 그것도 큰 현상의 한 모습이고, 사실이다. 분명히 지탄받고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왜 그렇게만 볼까? 그것도 비정한 현실이다. 균형 잡힌 정보와 지식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그날 제가 거기서 올리브를 따고 있었다. 너무 걱정이 돼서 농부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괜찮다고 답하더라. ‘뭐가 괜찮냐’ 물었는데 ‘나중에 천천히 죽으나 지금 죽으나 본인들 입장에서는 매 한 가지’라고 답했다. 이런 사건이 있었던 건 그렇게 개의치 않았다. 누구한테나 죽음은 공포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자 지구에서 폭탄을 맞아 죽거나 서안지구에서 전쟁통에 총탄을 맞아 죽는 사람들에겐 달랐다. 이제 죽음이 눈앞에 있거나 아니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시선과 생각들은 많이 달랐다. 저의 시선과 생각은 동일하진 않다. 그리고 되게 좀 화도 많이 났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분명히 달랐다.



-전쟁이 나면 하마스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거의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현상의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의 차원, 역사적 차원 등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이야기 하기 전에 최근에 찾아본 궁금증이 2개가 있다. 연관이 있을지 몰라서 여쭤보면서 얘기를 좀 듣고 싶다. 첫 번째는 가자 지역 주변에 정착촌들을 주로 타격한 공격이었다라고 알고 있다. 정착촌이라는 게 말하자면 파시스트라고 스스로를 명백하게 자임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거주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서 일상적으로 모욕이나 폭력, 공격까지 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정착촌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들이 꽤 있다고 알고 있다.

물론 ‘그게 얼마나 정당할 수 있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이미 일상적으로 당해왔던 실제 범죄 수준의 공격에 대한 대항 폭력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라는 게 첫 번째 질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대규모는 아니지만 기존에도 이스라엘이 워낙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10대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도 지금까지 구금해 왔었다. 구금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석방하기 위해서 하마스나 이런 집단들이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납치해서 그들과 교환하는 게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 이 두 가지를 여쭤보고 싶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대담을 풍부하게 하는 좋은 질문인 것 같다. 정착촌은 가자지구 외부에 있다. 가자지구 내에 있는 정착촌 2005년도에 다 소멸을 했다. 장벽 너머에 있는 마을들을 정착촌이라고 하는데, 인권 활동가들이 얘기하고 있는 illegal settlements, 불법 정착촌은 서안지구나 예루살렘에 등 점령지 내에 있는 정착촌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 아주 인근이나 아니면 인접한 지역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한다. 가자지구 외부에 있는 정착촌도 ‘정착민 아니냐, 어느 정도는 그들이 우리한테 했던 범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을 민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현지 사람이 얘기를 하더라. 그건 설득력이 높았다.

물론 이제 서안지구나 동예루살렘에서 정착촌의 폭력은 너무나 잔혹하다. 10월 7일에 올리브를 따고 있었는데 서안지구 나블루스 외곽에 있는 올리브 농장이었다. 그 근처에 이지아르라는 정착촌이 있다. 악명 높은 곳이다. 눈으로 보는 앞에서 바로 불을 질렀다. 저쪽 마을 너머에서 연기가 확 올라오더라. 그런 식으로 불법 정착민에 대한 폭력들은 너무 만연화 되고 그들의 만행들은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대항 폭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 입장에서 보면 48년 전 가자지구 점령 전부터 장벽 너머에 있었던 소위 이스라엘 집단 거주지를 정착촌이라고 붙일 수는 있다. 하지만 서안지구의 정착촌만큼 상시적 악행이나 범죄가 있었다고 보는 건 저는 좀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하마스가 대부분 군인 인질을 많이 납치했다. 2014년 혹은 2004년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지금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하마스뿐만 아니고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이 너무 많다. 아무런 영장 없이 검찰이나 군인이 잡아가더라도 행정부를 통해서 6개월간 구금 연장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정치범과 양심수들을 석방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을 교전 와중이나 아니면 침투 과정에서 생포에서 협상도 많이 했고 성공한 적도 많다. 한 명을 석방 해서 거의 천 명 가까운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을 석방한 사례도 있어서 관행처럼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민간인들을 너무나 많이 인질로 삼는 건 국제연대 활동가들에게도 전례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라는 이성적 판단도 어렵게 되더라.

하마스가 승리를 자신하거나 정말 치밀하게 물밑적인 판단을 끝내고 갔다고 보지는 않는다. 2023년 10월 7일을 끊어서 분절적으로 보면 유례없기도 하고 충격적이지만 이 사람들한테는 연속선상에 있는 삶이었다. 그리고 왜 10월 7일이냐고 했을 때 여러 분석가나 교수들의 말도 일리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사단법인 아디에서 팔레스타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언제 터져도 모를 가득 찬 풍선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올해만 해도 7월에 이스라엘 군인 2천 명이 항공 드론, 헬리콥터 동원해서 제닌이라는 정말 조그만한 난민 캠프에 지상 작전을 했다. 그리고 2021년에도 너무 많이 발생해서 그 사람들한테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만 자극이 되면 터졌었고 그런 게 반복이 됐다. 

종교를 가진 사람한테는 ‘알 아크사 모스크’는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지라는 특별한 장소다. 2002년에 샤론 총리가 알 아크사 모스크를 무장 경찰을 대동하고 방문해서 2차 인티파다라는 민중 봉기가 발생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성적 공간이다.

그런 알 아크사 모스크를 장악한 것을 넘어 이스라엘의 장관이 방문을 했고 그리고 무장 경찰들을 대동했고 거기에 있는 무슬림들의 예배를 중단을 시켰다. 이게 그 사람들애갠 너무 컸다. 2021년에 셰이크 자라도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쫓겨나는 사건을 통해서 전쟁이 발발했다. 그것도 사실 성지 문제였다.

정말 솔직히 얘기하면 하마스도 이 사태를 예상 못 했을 거다. 하마스는 준비를 했고 여러 작전들을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넘어 가고 보니 너무 무주공산이었던 거다.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하마스가 넘어가면서 했던 최대 목표치는 인질 정도였나 보더라. ‘저항이 없다면 이스라엘 군인을 잡아서 우리가 나중에 협상용으로 쓰자’까지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판단의 한계치였는데 넘어가보니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거의 손을 놓을 정도로 공격이 없었다. 

하마스가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저항을 하면서 승리를 다짐해서 결정하기보다는 모든 순간이 절박했고, 어찌 보면 최악의 전술인 목숨을 담보로 저항을 했던 거라고 본다.

 

=이선우(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가 중동 정치에서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가장 약한데 가장 뜨거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이스라엘이나 미국하고 뭔가를 할 때 늘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한다. ‘팔레스타인을 정식으로 이스라엘이 국가가 승인해 주면 우리가 뭘 하겠다’ 항상 늘 이런 걸 이야기했다.

근데 오바마 정부 들어서 셰일가스, 셰일이 개발되면서 중동 석유 의존도가 떨어지게 됐다. 또 중국이 갑자기 급부상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있던 군대를 빼서 중국으로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냥 보내면 또 뭔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어떻게든 화해를 시켜보자’ 해서 이것저것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2004년 혹은 2006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미국이 ‘이스라엘하고 사우디와 좀 정상화를 하시오’라고 했을 때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국가로 인정하면 하겠다’라고 해서 이스라엘이 거부한 적이 있었다.

반면 오바마 정부 이후로는 팔레스타인 얘기가 거의 안 들렸다. 미국하고 중동 여러 국가들이 협상을 할 때 팔레스타인 얘기가 잠깐 나오거나 아니면 버린 카드처럼 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공포스러웠을 수도 있다. 한국이나 북한 같은 나라면 그런 피해가 와도 ‘우리끼리 살면 돼’라고 하겠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런 입장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이스라엘 내부,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나름대로 협상을 생각 했던 것 같다. 반면에 오슬로 협정 있었을 때 이스라엘 극우 청년이 협정을 반대하면서 이스라엘 총리를 쏴죽였다. 이런 맥락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네타냐후의 등장, 초강경 모드 등이 결국 팔레스타인한테 ‘이제는 우리가 진짜 사라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존의 문제와 ‘이제 지구 혹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심을 주었던 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보는 느낌도 많이 있었다.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좀 얘기를 해보고 싶다. 첫 번째로 많은 전문가가 지금도 정치적인 권한을 많이 가진 합리적 행위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결과를 만들어냈나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하고 있고’,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사우디가 미중 관계 속에 어떻게 처신을 하고 있고’라든지 ‘이란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고’, ‘이란과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개선하게 되면 이란이 어떻게 불리해지고 하마스는 더 고립되고 그 과정에서 이런 어떤 국제정세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해서 타개하기 위해서 하마스가 일을 저질렀다’ 이런 식의 분석들을 많이 한다. 틀린 분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너무 모두를 합리적인 행위자로 보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지는 않던데’라는 생각이 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너무 안 나온다. 예를 들면 동화 님 얘기하신 것처럼 ‘봉쇄된 땅을 넘어서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갔더니 무주공산이더라’, ‘우리가 생각했던 최대치의 목표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더라’, ‘이럴지 몰랐다’라는 게 오히려 더 현실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폭력이라는 걸 되게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폭력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은 폭력은 합리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작은 목적에 대해서 작은 폭력을 사용해야지’이지만 폭력은 늘 에스컬레이팅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국제법상으로 제네바 협약이니, 전쟁법이니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전쟁 범죄가 없는 전쟁은 없다.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리는 더 구체적인 걸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그만큼 몰려 있었던 것 같다. 팔레스타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자라는 게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가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더라. 물이라든지 환경이 오염되고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물이나 전기 등을 다 수입하고 있다. 가자 자체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 땅이 생존 불가능하게 변하고 있고 우리는 이 땅에서 나갈 수 없게 됐다’인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때문인 거다.

그렇다면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폭력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해서 공격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게 이번이 되었을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롭 닉슨이라는 학자가 ‘느린 폭력’이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천천히 진행돼서 모두를 갉아먹는, 모두를 습격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점령하고 봉쇄했던 게 느린 폭력인 것 같다. 우리 눈에 폭력의 과정들이 가시적으로 잘 보이지 않고 느린 폭력에 저항하는 하마스의 폭력적인 목소리, 공격만이 우리 눈에 가시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균형 있게 보려면 사실 둘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많은 언론들이 ‘왜?’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다. 하마스하고 파타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는 정당 또는 세력이라고 하는데 사실 둘 다 팔레스타인에서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 워낙 오랫동안 독재하고 있고, 2005년 선거 이후로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가자지구 내에서 하마스에 대한 불만들이 너무 높은데 이걸 잠재우기 위해서 언론인들 죽이고 시위하면 죽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제 2020년도부터 서안 지구나 제닌을 중심으로 해서 이게 라이온스 덴, 제니 여단이라고 하는 젊은 무장조직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잡으려고 집중했다. 하마스나 가자 쪽은 막아본 곳이기 때문에 병력이 좀 얕았고 나블루스하고 제닌을 3년 동안 주로 공격했다. 그만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신흥 무정파 무장 세력들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눈에 보일 만큼 완벽했다. 그런 와중에 파타는 그냥 살아가고 있었던 거고, 하마스는 본인의 건재함 또는 폭력성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더불어서 지지를 얻기 위한 하나의 부가적인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이선우, 이동화, 최성용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정옥다예

 

-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시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시위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각각의 지지자에 대한 탄압이나 공격도 이뤄지고 있다. 동시에 ‘하마스가 아기의 목을 참수했다’와 같은 허위조작 정보가 퍼지기도 했다. 허위조작 정보 포함해서 현재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대한 관점과 시민들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주시면 좋겠다.

 

=이선우(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지금 한국 언론들은 대체로 미국 언론을 그냥 받아 쓰고 있는 것 같다. 하다못해 ‘가장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언론이라도 한번 참고를 해봤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일본 언론은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났을 때 일본 물가는 어떻게 될까’ 이 생각만 하고 있다. 중국은 얼마 전 뉴스에는 ‘중재를 하겠다’ 얘기했는데 오늘 아침 뉴스를 확인하니 이스라엘에 대해서 ‘너무 도를 넘었다’, ‘중국이 왕이 외교부장을 파견해서 이스라엘을 가겠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남의 나라 돈으로 먹고 사는 나라 치고는 진짜 남의 나라에 대한 정말 관심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만드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주는 허위 정보, 가짜 뉴스들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즈 같은 데서 받아 쓰고 그걸 또 베껴오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을 해야 되지 않나싶다. ‘세계가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다.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최근에 국내에 한국전쟁 연구의 주 테마 중 하나가 심리전이다. 학자들은  ‘미국이 심리전 체계와 심리전 기구와 심리전 기술들을 성립하고 완성시킨 게 한국전쟁이었다’라는 평가들을 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주된 매체가 사진과 삐라였다. 근데 지금도 ‘우리 24시간 후에 처들어갈 테니까 그전에 민간인 다 대피하세요’ 같은 삐라 100만 장 넘게 뿌리는 사진들이 배포가 되기도 했다. 단순히 종군 기자만이 아니라 군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는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데리고 전장을 다닌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장벽 바로 앞까지 가는데 부대와 함께 한국 기자를 포함한 기자들이 동행했다. 폐허나 참상들을 촬영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인터뷰했다. 여기서 ‘아기를 참수했다’라는 허위 정보도 장교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당시 부대 부사령관을이 이야기한 내용이다. 

심리전이라는 게 여러 언론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이 계속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과 기술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가능하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하마스가 심리전을 벌인다’라고 한다. 납치를 하는 등의 과정 자체가 ‘우리가 아직 건재하고 여기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알려달라’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심리전인 거다. 그런데 그 심리전 역량에 비해서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역량이 훨씬 더 강력하다. 굉장히 비대칭적이다. 한국 언론들도 그 영향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구체적인 맥락들을 보도해 주는 합리적인 외신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만큼 언론이나 목소리들이 이스라엘의 심리전과 프로파간다에 훨씬 더 집중돼 있다.

다른 하나는 대항 폭력의 구도를 넘어야 된다. 하마스의 대항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항 폭력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이번엔 하마스가 확실히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선을 넘었기 때문에 하마스가 문제다’ 혹은 ‘대항 폭력이니까 이스라엘이 문제다’ 이 구조에서 사실 넘어가야 된다. 우리가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당사자가 아닌 만큼 목격자로서 더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여러 맥락들을 살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되게 단편적으로 ‘너는 어느 편이야?’라고 묻는 그 구조 속에서 ‘나 이쪽 편이야’를 계속 택하려고 하는데 그걸 넘어설 필요가 있다.

하마스가 저렇게 했던 근본 원인 중에 하나는 우리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만큼 무관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어떤 관심이나 여론도 보태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일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연루되어 있다. 우리의 무관심도 저 폭력의 원인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되고 그 관심이라고 하는 건 즉각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좀 더 합리적으로 보면서 ‘누가 잘못했고, 누가 못했고’라는 그 구도를 넘어서서 근본 원리를 봐야한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게끔 하는 내 입장을 만들어가야 된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팔레스타인 현장에 있을 때는 사람들하고 얘기를 통해서 사태를 확인을 하고 내용들을 습득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언론을 통해서 현실을 파악하게 됐다. 언론을 잘 보시면 그 기자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몇몇 주요 언론들은 현장 가기도 한다. 어디에 있는지 보면 이스라엘 쪽에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의 대변인 말을 듣고, 이스라엘 군인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의 의견들을 기사화한다. 그래서 참수 사건이나 강간 사건과 같은 대표적 오보가 나왔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편향된 의견들이 기사화될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상대편에 있는 가해자라고 얘기하고 또 피해자이기도 한 가자지구에 서 있는 기자는 몇 명이나 될까? 있긴 있다. 적지만 지역 언론이라든지 아니면 중동 지역 언론들이 계속 본인이 본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양쪽의 의견을 듣고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언론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위치하고 있는 땅 옆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를 보면 너무 안타까울 정도로 편향되어 있다. 그리고 그 편향된 시선과 기사들이 사람들한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약 기자가 가자 지구에 서 있었으면 장벽을 봤을 거다. 그리고 그 답답한 현실을 보고 피해 받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었을 거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그 답답한 감옥에서,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장벽이 세워지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꿈꿨다. 그래서 ‘왜 하마스가 공격했냐’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가자지구에서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마스가 이 사람을 공격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한다.

언론이 모든 것들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에 돌아와서 언론을 보면서 열받아 죽는 줄 알았다. 이스라엘 대변인이 따로 없더라. 정제되지도 않았고 일방적이고 확인도 안 된 것들이 출처 표기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방 대변인에 따르면’ 이렇게 달리더라.

‘너무 편향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그리고 ‘그 편향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1,400명의 이스라엘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면 그 바로 뒤에 역사적으로 수배에서 수백 배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있다. 가장 처음 우려했던 것들은 2008년 첫 번째 가자 전쟁 때 이스라엘측 사망도 있었다. 8명인가 10명 이내일 거다.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00명 단위다. 항상 100배다. 그리고 2021년, 2014년도 사망자만 비교하면 제일 컸던 경우 25배쯤 된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대체 누가 들어줄까? 불균형적인 언론의 현실 그리고 세상의 여론들은 그게 불가능할 거다.

예전에는 정보가 정말 없었다. 현장에 가야지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자들도 조금만 성실하고 노력하면 적어도 ‘한편 하마스에 의하면’, ‘한편 팔레스타인에 의하면’ 같이 쓸 수 있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 역할을 좀 해주면 좋겠다.

이제는 시민들이 일방적인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인터넷상에서의 댓글을 보면 너무 극단적으로 가서 많이 암담하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가는 게 양쪽의 사회를 대변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물론 이스라엘도 극우 세력이 있고, 팔레스타인도 극우 세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들은 되게 많은 과대 대표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은 반대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고 지금도 폭탄들을 피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극우 정치인이나 아니면 무장 세력들이 지금 표출하고 있는 공격성에 사실은 인식들이 쫓아가면 더 위험해질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 같고 세상은 조금 더 극우적으로, 극단적으로 갈 것 같다.



-복잡하게 꼬인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지?

 

=이선우(큐슈대학 중국철학사 석사):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탄핵 촛불 집회 이후로 좀 강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때부턴가 한국 사람들 사이에 ‘과격하고 공격적인 방식의 시위나 투쟁은 다 잘못이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전장연 시위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도 마찬가지고, 이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맥락을 알아도 ‘그래도 잘못했다’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반성도 있어야 한다. 모든 시위도, 투쟁도 다 상호작용이고, 대화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그동안 대화를 거부해왔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한국 사람들도 반성을 했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정부나 언론에 대한 요구다. 진영 논리에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 보니 바이든 대통령도 간다 그러고 러시아도 이스라엘과 통화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불과 며칠 전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해보면 미국 언론에서 이란이 배후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미국 정부에서 ‘도와줄 건 있겠지만 지원까지는 아니다’, ‘배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확전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한국 언론은 ‘하마스가 북한제 무기를 쓰고 있다’, ‘북한 무기가 발견됐다’, ‘소식통이 전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곧 중동 순방을 한다. 저번처럼 ‘이란은 주적’ 이런 소리 하면 진짜 큰일 난다. 정치적인 면에서 제발 이럴 때는 원칙적인,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우리도 역사적인 경험이 있는 민족이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핍박받아 왔는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그런 원칙, 가치를 이야기하는 게 좀 부끄럽거나 오글거리면 입장 표명이라도 천천히 하면 좋겠다. 하마스가 공격하자마자 한국 외교부에서 하마스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북한제 무기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에 가는데 거기서 무슨 얘기를 할까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그래서 진영 논리 차원의 얘기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인들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이 없으면 말이라도 아꼈으면 좋겠다.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사단법인 아디는 인권단체이고, 인도주의 활동을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당장 행동을 해야 하고, 할 예정이다. 가장 시급한 건 종전이다. 지상군 투입은 절대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이 사태의 모든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있다. 점령을 하고, 차별을 하고 심지어는 ‘인종 청소’라는 용어까지 쓰는 정책들이 없어져야 된다.

그게 되지 않고서는 공격과 학살과 종전과 반복되는 순환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2년 단위, 4년 단위로 반복하고 있다. 지상군 투입이 돼서는 안 되고, 전쟁은 종료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많은 협상과 결과들을 냈다. 그게 ‘1국가 1체제’ 아니면 ‘1국가 2체제’든지 간에 서로가 살 수 있는 공간들이, 그들의 인권이 존엄성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그리고 각자의 정치 체제를 통해서 존재하면 된다. 그래서 가장 큰 난제는 ‘점령을 의식한다’는 거다. 사실 3차 중동 전쟁 이후 국제법 통해서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그리고 가자지구 봉쇄 풀면 된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정치 투쟁을 통해서 어떤 형태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건 팔레스타인 몫일 거다. 최소한 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남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권리가 보호되는, 우리한테는 정말 극히 평범한 자유와 인권들이 보장되는 정도만 가면 된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이스라엘 편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경제적 이유나 석유가 있다거나 아니면 뭐라도 있으면 좋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한국 집회에서 국기가 있다는 걸 보고 너무 궁금해한다. ‘왜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쁘냐’ 그러니까 저도 설명이 잘 안 됐다. 왜일까?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무관심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 편애가 있는 것 같다.

한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느낌이냐면, 처음에 가면 항상 남한이냐 북한이냐 묻는다. 하도 많이 들어서 ‘너 북한 사람 만난 적 있어?’ 했더니 ‘남한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라더라. ‘근데 왜 남북한 물어?’ 그러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미국하고 가장 친한 국가가 한국이고 이스라엘과 가장 친한 친구가 미국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보면 다 적이었다.

분명히 외교부 내에서도 정보 취합을 할 거다. 전쟁의 피해 결과는 어마어마하게 비대칭하다. 비례가 안 맞다. 사망자 숫자, 부상자 숫자, 가옥 파괴, 재산 피해, 경제적 피해 등 너무 압도적인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중동의 유일한 선진국가이고, 하마스는 테러리스트라’는 너무 단순하고 현상과 맞지 않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한국이 또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알고 있는데 창피하지 않게끔 노력을 좀 해 줬으면 한다. 물론 기대는 높게 하지는 않는다.

 

=최성용(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 ‘이스라엘 친구는 많지만 팔레스타인 친구가 없다’. ‘크리스찬 시오니즘’이 이 얘기에 이어진다. 웃기게도 기독교이지만 유대교와 친하고 이스라엘을 성지로 생각하는 게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 기독교 계열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이기도 하다. 굉장히 가까운 관계다. 그런 맥락들이 있기 때문에 언론들이 아무 생각이 없어서 이스라엘의 이야기만 받아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문화적 토대들이 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누가 잘못했냐’도 중요할 수 있지만 ‘일단 사람을 살려야 된다’가 더 중요하단 거다.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고 있고 앞으로 이 상태면 더 죽어나갈 거다. 아까 ‘폭력이 에스컬레이팅 된다’라고 얘기한 것처럼 제노사이드가 갑자기 생기는게 아니라 가는 과정이 있다. 일상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면 그것이 더 증폭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결국은 ‘쟤들은 다 죽여야 돼, 절멸시켜야 돼’로 간다. 느린 폭력을 얘기한 것처럼 느린 홀로코스트의 과정이 팔레스타인의 일상이었다.

제노사이드라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한 인간 집단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빼앗고 물이든 올리브 나무든 전기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근거들을 다 박탈하면서 사람을 죽여나가고 느리게 진행돼 왔던 것들이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해서 가시적이고, 더 눈에 드러나게 디자인되고 있을 뿐이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정말 제노사이드로 간다.

제노사이드로 가지 않는다고 하면 이번에는 가자 북부를 다시 한 번 점령하고 남부로 가자 주민들을 다 몰아넣는 게 될 것이다. 그건 제노사이드라는 최종 단계를 다음으로 미루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살려야 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평화학적 관점에서 보면은 갈등은 나쁜 게 아니다. 갈등이 드러났을 때 ‘이게 문제가 있고, 누군가는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권력을 적게 가지고 있어서 뭔가 부정하거나 잘못된 일이 생기네’라는 게 갈등으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학에서 ‘갈등을 통해서 사회를 혹은 국제사회를 더 낫게 만들고 사람들이 좀 더 평등하게, 정의롭게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라는 얘기를 한다.

하마스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부정의하고, 고통스럽고, 통증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국제사회가 듣지 않았다. 듣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극단적인 갈등 형태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지금이라도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가면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은 또다시 문제가 발생할 거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설령 이번에 제노사이드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제노사이드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기회 근본 원인을 해결해 가는 방향으로 이 갈등을 전환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보태고 싶은 말이 있을지?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이사): 첫 번째는 가자 지구의 피해만 집중되고 있는데 서안 지구에서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 당하고 있고, 50명이 넘는 시위자들이 현장에서 발포를 통해서 사망하고 있다. 가자 지구가 지금 가장 피해가 극심한 하지만 팔레스타인 전체로 피해가 지금 나눠지고 있다. 그 피해는 역사적으로도 반복되어 있어서 팔레스타인 전체를 봐야 될 것 같다. 가자지구를 떨쳐서 보거나 서안 지구로 떨쳐서 보는 것들은 선명하지도 않고 객관적지도 않다.

현지 친구가 이 사건이 나고 저랑 논쟁을 많이 했다. 하필이면 하마스였다. 어쨌든 제3자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근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세상에 누가 우리 얘기를 들어줬냐’였다. 그들 입장에서 세상은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하마스가 자기를 대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마스는 얘기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된다. 그런 게 너무 슬픈 현실이다.

몇년 동안 통계를 추산해본 결과 이스라엘 방문자 중 한국인이 굉장히 높은 순위권에 있다. 아시아에서는 3위고 이스라엘 통틀어서 7위다. 2만에서 3만 명이 이스라엘을 간다. 그 한국 사람들 어디 가는지 알고 있나? 팔레스타인에 간다. 베들레헴. 동예루살렘 다 팔레스타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갔음에도 이스라엘에 간 줄 알고있다. 존재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팔레스타인은 오랫동안 잊혀졌고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번에 하마스가 정말 많은 누군가를 죽임으로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보고 있다. ‘갈등에 순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가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이 상황을 같이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같이 보는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반드시 귀 기울어야 된다.

아디는 활동을 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진영 논리가 될 수 있음에도 최선을 다해서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피해를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게 누군가한테는 ‘테러리스트, 무슬림의 추동자’라고 욕을 먹을지언정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그들의 의견을 좀 더 전하는 것들이 우리가 가져야 되는 최소한의 태도이고, 이 사태의 악화를 멈출 수 있는 국제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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